날씨, 휴일, 축제!
"엄마, 숨이 안 쉬어져요!"
5월 초, 홍콩 공항에서 나서자마자 꼬마쥐가 당황하며 말했다. 한국의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어딜 가도 쾌적하고 따사롭다. 홍콩이 한국보다 더울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더웠다. 더위보다도 큰 문제는 물속에 빠져있는 듯 높디높은 습도였다. 5월의 홍콩은 한창 습하고 더운 한여름의 한국과 비슷하다. 바깥에 나가있는 매분매초가 극기훈련의 순간 같았다.
게다가 홍콩의 우기가 5월에서 9월에 걸쳐 지속되는데, 한 번 비가 오면 정말 많이 온다. 내가 5월에 방문했었을 적에, 둘째 날 하루 종일 비가 오다 말다 했었는데 비가 올 때는 가랑비가 아니라 폭우가 쏟아졌다. 우산을 쓰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옷과 신발이 젖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물이 고이니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져 다칠 위험도 있다. 게다가 덥고 습한 야외와 달리 실내에 들어서면 강력하게 냉방을 돌리고 있어 감기에 걸리기 딱 좋아 보였다.
비 오는 날의 가장 큰 문제는 나이트 쇼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디즈니의 나이트 쇼와 불꽃놀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이트 쇼가 디즈니의 5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파크에서 정성과 예산을 쏟아 준비하는 공연이다. 작년 11월, 홍콩 대화재로 애도를 표하기 위해 나이트 쇼인 모멘터스가 일주일 정도 취소된 적이 있었는데, 홍콩 디즈니는 그 기간에 방문한 방문객들의 입장권을 6개월간 연장하여 재방문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나이트 쇼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다. 문제는 우기 중에 태풍이 오면 나이트 쇼가 아예 취소될 때가 있고(이 경우는 티켓 연장 같은 거 안 해준다) 불꽃놀이만 축소되거나 취소될 때도 있다. 모처럼 시간과 돈을 들여 놀러 갔는데 나이트 쇼를 제대로 못 본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우기의 홍콩 디즈니를 절대 가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딸과 나 또한 5월의 디즈니를 폭염과 폭우 속에서도 나름 즐겁게 보냈다. 특히 폭우 속에서 오큰의 슬라이딩 썰매를 타며 신나게 소리 질렀던 건 아직까지도 즐겁게 떠올리는 추억이다. 우리는 아마 평생을 두고두고 따끔따끔 빗방울을 맞으며 탔던 오큰의 썰매 이야기를 할 것이다. 덥고 비가 오면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즐기면 된다. 다만 아이를 데리고 가는 부모 입장에서 쉽지는 않다는 걸 알아두고 더 잘 준비해서 가야 한다.
단점만 있는 건 없다. 5월의 무더위 속에 딸과 함께 즐겼던 또 하나의 즐거움은 호텔 수영장이었다. 특히 내가 머물렀던 디즈니 익스플로러스 호텔의 레인드롭스 풀장은 남중국해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풀장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시원하게 수영했던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더우면 낮에는 수영하고 해 지면 파크로 나가면 된다.
두 번째로 방문했던 11월의 홍콩은 정말이지 쾌적함 그 자체였다. 한국의 선선한 가을 날씨 정도여서, 낮에는 반팔이나 얇은 긴팔 밤에는 후드티 정도면 충분했다. 5월에는 파크를 걸어 다니면서 너무 더워서 그늘이나 건물 안을 골라 다녔는데, 11월에는 각종 정원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우기를 피해서 가을/겨울 시즌에 방문하시기를 추천하는 바이다. 홍콩 사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3월부터는 더위와 습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니 선선한 때 홍콩을 즐기고 싶다면 11월에서 2월을 추천한다.
홍콩 디즈니 방문시기를 결정할 때 나는 항상 세 가지를 고려한다. 첫 번째는 앞서 언급한 날씨. 두 번째는 한중일 삼국의 휴일, 세 번째는 페스티벌 유무이다. 한중일 삼국의 휴일을 고려하는 이유는 너무 번잡한 때를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타국 디즈니에 비해 여유로운 파크야말로 홍콩 디즈니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일 텐데, 굳이 그 장점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대략적으로 혼잡도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홍콩 디즈니 홈페이지에서 내가 방문하고자 하는 날이 몇 티어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Tier 1이나 2라면 비수기, 3이면 성수기, 4라면 극성수기라 봐도 무방하다. 혹은 디즈니 호텔의 숙박비를 보고도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AI 시대에 이 모든 게 다 귀찮지 않은가. 나는 제미나이한테 물어보는 편이다. "4월에 홍콩 디즈니를 방문하려 하는데, 한중일 포함 근처 국가들의 휴일과 방학을 고려해서 가장 방문객이 적을 시기를 예상해 봐"라고. 그러면 자기가 알아서 제안해 준다. 4월 초의 부활절 방학처럼, 우리나라의 학기제만 생각했다가는 놓치기 십상인 요소들이 있기에 여행일정을 정할 때 꼭 미리 확인하기를 추천한다.
날씨와 성수기/비성수기 외에 또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면, 페스티벌이 아닐까. 디즈니랜드는 일 년 내내 이런저런 축제들을 진행한다. 예를 들어 신년에는 새해 축제가 있고, 봄에는 더피 프렌즈를 테마로 한 봄축제, 10에는 핼러윈 축제, 11~12월에는 크리스마스 등의 테마를 가지고 축제가 진행된다. 축제 별로 특별한 공연이 진행되기도 하고, 재미있는 이벤트를 진행하니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내가 즐기고 싶은 축제에 맞춰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디즈니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정말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설렘이 디즈니라는 상황 속에서 수천 배로 증폭되는 느낌이다. 너무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사방에서 반짝이고, 크리스마스 테마 옷을 입고 등장하는 캐릭터들, 시즌 한정 기념품 등은 보고만 있어도 두근거리고 행복하다.
크리스마스 외에도 정말 인기 있는 시즌은 핼러윈 시즌이다. 핼러윈 기간 중에는 디즈니 만화/영화의 악역들이 나와 퍼레이드, 그리팅, 공연을 펼친다. 홍콩 디즈니는 이 기간 동안 라이언킹 뮤지컬을 내리고 위키드라는 악역 공연을 올리는데 정말 인기가 많은 공연이다. 게다가 평소에는 성인이 디즈니 캐릭터 의상을 입고 파크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이 핼러윈 기간만큼은 예외이다. 하여 전 세계에서 모인 디즈니팬들이 각양의 코스튬을 차려입고 파크에 방문하는데 이걸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어린아이들 같은 경우는, 기념품샵에서 파는 작은 호박바구니를 사면 캐스트들이 trick or treat 사탕과 과자를 채워주기도 한다.
디즈니파크 자체의 페스티벌은 아닐지라도, 아이의 생일에 방문하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생일축하 배지를 달고 다니면 지나다니는 캐스트 멤버들이나, 그리팅 할 때 만나는 캐릭터들, 심지어 오며 가며 마주치는 방문객들까지 "Happy Birthday!"라고 축하해 주니 아이가 너무 행복해했다. 디즈니 호텔에 숙박하는 경우, 조금 가격이 들긴 하지만 생일축하 패키지 같은 것을 미리 신청해두면 아이가 좋아하는 테마로 미리 방을 꾸며둔다던가, 생일 케이크를 준비해주는 등의 유료 서비스들도 있으니 고려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