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두번째 소기업
두번째 소기업에 입사를 해보니 그 곳은 디자이너들도 여럿 있었다. 인원도 20여명 가까이 되었는데 디자이너가 7명이었다. 그 회사에서도 연봉은 매우 짰지만 야근 수당이 생겼다. 8시~9시까지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야근도 확실히 많이 줄었다. 아, 그리고 주 5일로 바뀌었었나.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지만 급여는 야근 수당까지 합하여 140만원 정도 받고 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최저임금이 3천원 초반이었을 때였으니 알바비 정도로 받고 일했었나보다.
두번째 직장에서 야근이 줄고 시간이 더 생기게 되어 조금씩 하던 블로그 활동이 점점 많아졌다. 그래도 잠을 거의 몇시간 못 자며 활동을 했는데, 블로그는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닌 단순히 재미와 왠지 모를 성실함, 제안이 왔을 때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 합쳐져 4,000명이 하루에 들어오는 블로그로 성장했다. 원고료도 조금씩이지만 받을 때도 있었다. 블로그가 성장하여 블로그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는 못했고, 이후에 대기업 취업을 할 때 영향을 미치는 일이 되었다.
당시에 한번에 하나만 하면 스스로 게으르다고 생각했을까.
여러가지를 한번에 다 하고 싶어서 잠을 줄이며 했던 일들은 어릴 때는 문제 없었다. 놀기도 놀았지만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블로그를 하는 일들이 많았다. 노는 것도 블로그로 참석하는 행사들이 노는 것이 되었는데, 내향적이고 사람 만나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나는 블로그에서 어쩔 수 없는 활동들 때문에 꾸역 꾸역 그 행사들을 노는 거라고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며 참석했었다.
20대의 나는 가진 게 없어 불안했고, 아주 작은 것도 들어오면 놓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블로그가 성장했던 성장하지 않았던 나는 같은 성실함의 크기로 했을 것이다. 직장만 다니기도 힘든 지금의 내 모습과 시간적 여유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무엇가를 또 도전하고 싶다,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회사, 행사, 블로그 글쓰기, 친구 만나기, 연애, 가족, 공부. 편입.
20대 초반에 나를 떠올리면 저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뷰티 위주의 블로그 였기에 뷰티 행사에 참석할 일이 너무 많았는데 나와 성향이 반대이신 분들은 그런 일들이 재미있었겠지만 난 그런 외부 활동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 때문에 난 화장품 회사에 지원하면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물론 나이가 깡패이던 신입 시절이야기이긴 하지만.
행사에 참석하면 대학생 서포터즈들도 있었고 그들이 참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았다. 직장인 신분+내향적인 성격의 나는 그들이 참 신기했는데 결과물을 놓고 보니 나는 몇백배 열정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나 하나 기억을 떠올리며 적어보는 내 인생은 가성비로는 상급이었지만, 내 삶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삶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에라도 이렇게 글을 적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 다른 분들이 쓴 글을 보는 것도 행복하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된 것도 처음에는 글쓰기의 행복이었지만 돈이라는 게 참 무서운 일인 것이, 돈 또는 혜택을 받으면서 글도 쓸 수 있다니 행복하다 생각했었지만 점점 일이 되어 버리니 처음의 행복은 퇴색되어 버리고 시간에 쫓기는 일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8~9년이 넘는 시간동안 했던 블로그를 그만 둔지 몇년이나 지났다.
물론 일로 생각되기 까지는 오래 걸렸다.
저 때의 난 일하는 직장인, 편입 희망생이면서 블로거인 바쁘고 잠은 안자는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편입을 하게 되었다.
입학식 하루 전까지 직장에서 일했다. 쉬었다면 주말 정도 끼여있었을까.
정말 쉬는 법 따위는 몰랐던 20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