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절반은 히키코모리
내 인생에 큰 사건들이 있었겠지만 가장 나를 아프게 한 사건 중에 하나가 졸업생인 나에게 일어났다.
마음은 폐허가 되었다.
어떠한 단어로도 설명이 안되는 일이 일어났고 벗어나기까지도 오래 걸렸다. 아니 사실 벗어나진 못했고 마음속에서 조금 희석되었다.
내 인생에 그보다 더 아픈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너무 큰 그 사건으로 인생의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의욕이 사라진 내 삶은 히키코모리와 비슷하긴 한데 블로그 활동으로 일주일에 1~2번은 행사를 갔기 때문에 완벽한 히키코모리는 아니었다. 나라는 사람은 참 지독히도 쉴 줄을 모른다.
쉬어야 뼈가 붙고 다리가 나아요- 라고 의사가 조언해도 다리를 절뚝이며 쉴 줄 모르는 사람같은 모습이었다.
잠, 시간 모든 것을 갈아 넣어서 뭐든 더 잘하고 싶고 하나라도 더 하고 싶고 의욕이 넘쳤던 나였다. 하고 싶은 욕심이 나면 끈질기게 생각하고 고민해서 실천에 옮겼다.
고민할 때 나는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그로인해 친구에게 서운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중요한 고민을 말하지 않는 건 내 성격이었지만 실행에 옮길 때 헷갈리지 않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은 장점이었다.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천해서 발전하는 진취적인 삶을 좋아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나는 진취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로 모든 것이 하고 싶지 않았을 때, 사회와의 끈은 블로그 뿐인 것들을 모두 겪고 나니, 지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울증이었을 것이다.
우울증은 슬프게도 병이다.
병은 의지로 이겨내는 것이 아니었다. 암을 의지로 이겨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우울증은 암과 같은 병이다. 의지로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치유가 필요한 일이다. 병을 이겨내기 위해선 치료도 필요하고 회복도 필요하고 휴식도 필요하다.
그 상태는 1년이나 지속되었다.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다. 창업이 하고 싶었던 꿈은 잊어버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누워서 TV 화면만 보았다. 블로그 활동은 안할 순 없었다. 블로그 활동이라도 있었기에 1년이라는 회복기를 거쳐서 다시 세상에 나올 때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어디든 좋으니 직장에 취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1년동안 나에게 그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셨던 부모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무력하게 누워만 있는 내 자식을 1년이나 아무말없이 볼 수 있을까.
그 말씀을 듣고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하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이력서를 썼다.
면접을 정말 많이 보았는데 붙은 곳도 많았고 떨어진 곳들도 당연히 있었다. 취미로 했던 블로그였지만 대학생들이 이력서에 쓰기 위한 서포터즈, 마케팅 활동등이 나에겐 넘치도록 있었다. 이력서에 쓸 내용이 너무 많았다.
내 활동들을 몇 줄로 쓰기에는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내 활동들을 포트폴리오에 연도별로 정리했다.
많은 회사들에 붙었는데 갑자기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 가고 싶은 곳들이 없었다. 누구나 들으면 알법한 화장품 회사에 들어갔다가 일주일만에 퇴사를 했다.
누구나 들으면 알법한 화장품 회사인데 들어가보니 기존 디자이너는 퇴사를 해버렸고 디자이너는 나 혼자였다. 아직 초년생인 나는 업무를 배울 수 있는 사수가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다시 직장을 알아보았다.
친구가 일하고 있던 대기업 계약직이 공고가 나서 그 곳에도 지원하고 여기저기 지원서를 내었는데 대기업 계약직에 합격하게 되어 입사를 했다. 디자이너가 지금 기억으로 최소 30명은 넘게 있었다.
2주일쯤 되었을 때 다른 대기업 정규직으로 서류 통과가 되어 면접을 보게 되었다.
첫번째 순서였는데 면접을 보고 나와서 잠깐 대기하고 있었더니 인사 담당자가 출근일은 언제부터 가능하냐고 물어서 2주 내에 가능하다고 이야기 했다. 나중에 들으니 5:1 면접이었는데 만장일치로 다음 면접은 볼 필요도 없겠다며 평이 좋았다고 한다.
디자이너라 ppt 발표 형식으로 면접을 보았는데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포트폴리오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면접을 잘 볼 수 있었던 건 압도적으로 많은 블로그 활동 덕분에 쓸말도, 남들과 다르게 나만의 것을 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디자인을 압도적으로 잘하는 분들에게는 할 말이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만의 무기를 추가로 가져가시라고 말하고 싶다. 디자인만 잘하기에도 힘든 거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
남들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무기를 꼭 만들자.
나에겐 운 좋게도 블로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