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 걷어. 설거지해야지.
기념품점과 슈테판 대성당에서부터 10분 정도 골목을 걷다 보면 다음 목적지인 카페 센트럴이 보인다.
카페 센트럴은 비엔나 3대 카페로 1876년에 오픈되어 역사 속 유명인사들도 방문했던 곳이라고 한다.
사실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우린 ‘명소’에 큰 관심이 없다.
아주 짧은 일정에 무계획이었음에도 큰 불만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곳을 찾은 건 명소였기 때문이 아니라, 다름 아닌 우리에게 지금 휴식이 필요해서였다.
“저거 혹시 줄이야?”
하지만 아쉽게도 카페 센트럴 앞으론 기나긴 줄이 늘어져있었고, 특히나 '빨리빨리' 문화가 아닌 이곳에서 카페 웨이팅의 시간은 우리가 대략적으로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하나 확실했던 건 이 웨이팅 줄에 서있다가는 휴식을 얻기 위해 휴식을 잃는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카페 외관 앞에 놓여있는 트리. 그 앞을 지나가는 마차. 그리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웨이팅이 얼마나 걸리든 이것은 중요하지 않으며 그만큼의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설명하려는 것 같았지만, 이것으로 우리를 완전히 꼬시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결국 우린 자리를 옮겨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로 결정했다. 일정 담당인 쌍둥이에게 다음 일정을 물어보았다.
“흠, 그렇다면 우린 미술관으로 간다”
우리의 발걸음은 그렇게 레오폴드 미술관에 돌려졌다.
레오폴드 미술관은 에곤 쉴레의 그림을 좋아해 수집하던 레오폴드 부부가 사후에 만든 미술관이라
특히 에곤 쉴레의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에곤 쉴레는 클림트의 화풍에 영향받은 예술가로서, 실제로 클림트가 인정한 예술가로 성장하기도 했는데,
그런 에곤 쉴레의 작품을 200여 점 이상 소장하고 있으니 세계 최고의 에곤 쉴레 미술관이라 가히 불릴 만했다.
미술관 앞에 놓여있는 작은 트리 앞에서 소심하게 뒷모습을 살짝쿵 남기고,
입구로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이 서있는 줄을 따라 서니, 자연스럽게 입장권을 살 수 있었고
또 다른 줄을 따라 서니, 어느새 우리 소지품을 모두 맡기고 입장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런던과 파리에서 방문했던 미술관과는 다르게 외관이 화려하지 않고 현대식으로 잘 갖춰져 있었던 레오폴드 미술관은 작품에 집중하기 더없이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예술 계통에 오랫동안 일했던 게 무색하게 대부분 처음 보는 낯선 작품이었고,
미술 작품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우리는 영어로 써진 작품 설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실 작품이 어떻고 저렇고를 내가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작품이 누군가의 자화상을 주로 담고 있음에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들에겐 미술이란 도구가 그들의 일기이자, 거울이자, 삶 자체였을 것이란 생각에 이 거대한 미술관이 괜히 시끄럽게 느껴졌다. 이야기로 가득 차있는 거대한 대화방처럼 다가왔기 때문이었으려나.
시간은 고작 오후 3시를 조금 넘겼을 뿐인데,
날이 흐렸던 탓인지 겨울이었던 탓인지 벌써 암흑이 그윽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음 일정을 가기 전, 카페 센트럴에 못 간 것이 떠올라 허겁지겁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비엔나커피 한잔과 티 한잔 주세요."
“왜 커피 안 마시고 티 마셔?”
“아 나 지금 커피 마시면 잠 못 잘 거 같아."
이런 대화를 하니 마치 이곳이 한국처럼 느껴진다.
내가 시킨 비엔나커피만이 이곳이 비엔나라는 것을 체감하게 도와주고 있었다.
그런데 수다를 떨며 커피를 거의 다 마셔가는 중에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계산을 하기 위해 웨이터를 부를려는데,
“야 잠시만”
“왜?”
“우리 짐 모두 보관함에 맡겼잖아. 돈도 다 거기에 있는데..?”
“뭐?
와.. 소매 걷어라.. 여기 설거지하고 가야겠네…”
계산을 하고 자리를 옮기려고 하던 찰나에 우리의 모든 짐들이 1층 로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찌어찌 해결은 할 수 있겠지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구세주의 등장.
쌍둥이 / “야.. 진짜.. 바지 주머니에 현금이 만져지는데 얼마인지는 모르겠어..”
휴우, 아슬아슬했지만 다행히 커피값은 해결이다.
무사히 계산을 마친 후, 1층으로 내려와 겉옷과 가방을 보관소에서 건네받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는 중에 또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처음엔 단순히 충전 오류라고 짐작하고 말았지만,
자세히 보니 휴대폰 충전선이 고장 나 더 이상 충전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안타깝게도 여분의 충전선은 어제저녁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젠 우리 휴대폰에 채워진 충전 에너지가 전부였다. 매서운 추위에 우리 배터리들이 지레 겁을 먹고 급속도로 닳을까 우리의 체온이 휴대폰과 맞닿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배터리는 야속하게도 얼른 우리에게 숙소로 돌아가라 소리치듯 신나게 닳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린 이대로 숙소에 갈 순 없었다.
그 이유는 여름 유럽여행 중, 비엔나에 오는 야간열차에서 봤던 영화 <비포선라이즈>의 촬영지로 향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과연 그곳에서 진정한 사랑의 흔적을 만날 수 있을까?
아래는 여름 유럽여행 중 내가 영화 <비포선라이즈>를 야간열차에서 본 후 남겼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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