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From. France

by 김시언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안타까운 장면을 마주하는데, 그중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나의 온도 차가 많이 나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처음 파리에 방문했을 당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 문제가 화두였다. 그 때문에 파리 시내를 걷다 보면 거적때기 하나로 추위를 버티는 난민 가족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과 마주하면 마냥 즐겁게 지낼 수 없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우월감에서 비롯된 허영심이 아닐까? 혹은 위선일까? 혼란스럽기도 하다. 분명한 건 나는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 지갑에 있는 돈을 그들에게 주는 것도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순간의 연민으로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다면 과연 그들이 고마워할까도 의문이었다. 솔직히 마음 한쪽에는 그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난민 가족이 있었던 곳을 다시 지나가게 되었다. 당연히 그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근황은 알 수 없지만, 나름의 생존 방법을 터득했으리라 믿고 싶다. 최소한 그때처럼 추위에 온 가족이 부둥켜안고 떨지 않으리라... 그때만큼의 불행은 지나갔으리라 바랄 뿐이다.


안타깝게도 불행은 우리 삶 도처에 깔려있다. 하지만 불행을 정의하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대표적으로 프로이트는 미래와 현재의 삶이 과거의 불행으로 인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아들러는 과거의 불행을 열등감이라 말하며 인간은 이를 본능적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충분한 동기가 될 것이라 정의한다.


나는 불행에 관한 부분만큼은 아들러의 의견에 동의한다. 한땐 나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열등감의 문제였는데,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생각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불행의 늪에 나를 잠식시키는 행동은 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행위 일지도 모른다. 나의 현실조차 객관화하지 못하면서 감히 불행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


저마다 짊어진 고통의 무게는 알 수 없다. 다만, 불행의 원천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처음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는 가족들과 방문했는데, 2년 뒤 다시 오게 될 줄은 그것도 군생활 중에 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우리 배는 프랑스 셰르부르에 입항했다. 우산이 유명하다고 해서 우산 박물관에도 방문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1964년도에 개봉한 '셰르부르의 우산' 배경지였다고 한다. 영화 '라라 랜드'를 인상 깊게 본 분들에게 추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유명한 관광지에서의 기억보다 파리 골목을 돌아다니고 지하철을 탔던 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것 중 하나는 현지인들의 생활양식을 경험하는 일이다.

먼길 함께 걸어준 동료분들께 감사드린다.


bonj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