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1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당신은 복수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에게 할당된 중력의 무게가 3인분 같았던 10대에는 세상의 저울이 고장 난 것만 같았다.
에픽하이의 '인생은 누구에게나 화살세례지만, 나만 왜 맘에 달라붙은 과녁이 클까?'라는 가사는 심장을 후볐고, 끝도 없는 억울함이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혈관을 타고 온몸을 감쌌다.
혹여 SNS를 통해 나를 괴롭히고 상처 입힌 이들의 입가에 번진 행복을 보면, 내 심장에 박혀있는 못을 맨주먹으로 박아 넣었다. 더는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복수'
나는 한때 복수를 꿈꿨다. 그 사람들의 욕망을 알아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나 복수는 두 개의 무덤을 한 번에 파는 일이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럴만한 용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내게 일말의 용기가 존재했다면, 그들의 악행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겠는가?
나에게는 여타 복수극과는 달리 '마지막 화'라는 게 없다. 인생을 최대한 음미하고 싶기에 당연하다. 굳이 드라마로 표현하자면 장편 다큐멘터리 정도가 되려나? 그래서 '최고의 복수는 내가 잘 되는 것이다.'라는 어른들의 씁쓸한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고 한 가지 사자성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적악여앙 - 죄의 대가는 더디지만, 반드시 찾아온다.'라는 사자성어다.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 나의 나약함을 대변해 주었기에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기능으로는 양심의 역할도 했는데, 죄의 범위는 남뿐만 아니라 나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최근 들어서는 내가 바꾸지 못할 것에 힘들이지 않기로 했다. 검정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결국 더러워지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이득이기에...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좋은 것만 보고 경험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물론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 정신없겠지만, 기쁘게 나의 항해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니체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 고통이 나를 거의 죽일 뻔한 것은 난센스지만..)
덜컹이는 버스 안 지금 내 눈앞에는 톨레도의 웅장한 자태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톨레도의 아름다운 성벽은 치열한 복수극의 상징이라는 가이드 형님의 설명에 문득 '복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Q : 당신은 무엇을 밟고 서있나요?
돈키호테의 고향인 톨레도는 곳곳에 소설 속 흔적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넘버 '라만차의 기사'를 불러 보았고 녹음파일을 남겨두었다. 시간 되실 때 들어보시길... 참고로 1인 2 역이다.)
스페인 여행 당시에는 장발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단 한 번의 인종차별이나 위협을 경험하지 않았다.
(나도 안다 그 이유가 장발만 있지 않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