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린 Nov 25. 2022

한번 쓰고 망가진 슈트케이스

어리석은 충동구매로 배운 뼈저린 교훈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고 결심하기 전의 나는 충동구매에 꽤나 취약한 인간이었다. 특히 필요한 물건은 사전조사도 없이 "삘" 받는 대로 턱턱 사버리곤 했다. 


징글징글한 코로나로 오래 버티다 기다리던 5주간의 연말 휴가를 목전에 둔 어느 날, 나는 처음 들어간 길거리 가게에서 처음 보는 브랜드의 슈트케이스를 거금을 주고 사버렸다. 약혼자가 말릴 새도 없이 1분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에메랄드 색이라는 이유만으로. 길거리 가게의 슈트케이스치고는 전혀 길거리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옷장이 대부분 검은색 / 회색 / 남색으로 채워진 나는 가끔 에메랄드 색의 포인트 아이템을 보면 이성을 잃는다. 예를 들자면 운동용 브라탑이라던가, 여름 탱크톱, 지갑, 수영복 같은. 포인트 아이템이라고 생각해 제대로 투자를 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으니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에메랄드 색 저품질 아이템들이 나를 짧게 스치고 지나갔다. 


고대하던 휴가를 떠나며 새로 산 거대한 슈트케이스를 옷과 선물들로 꽉꽉 채워 한국을 찍고 유럽에 도착한 날, 나의 에메랄드 슈트케이스의 바퀴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개시하자마자! 


바퀴는 본체의 일부와 함께 뜯겨나가 수리를 하려면 비슷한 색과 소재로 본체의 망가진 부분을 채운 후에 비슷한 바퀴를 찾아 달아줘야 했다. 망가진 부분을 자세히 보니, 겉면이 조잡하고 얇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어 내가 굳이 이것을 고쳐서 써야 하나 현타가 왔다. 배보다 배꼽이 클 대공사를 할 만큼 내가 이 가방을 사랑하는가? 공사를 하고 나서도 짱짱하게 버텨줄 고품질의 제품인가?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안타깝게도 "노". 에메랄드 슈트케이스에 대한 짧았던 나의 애착은 바퀴와 함께 떨어져 나간 듯하다. 


그 후 1년이 지난 바로 오늘. 지난 한 해 동안 홍콩의 작은 집의 한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던 거대한 애물단지는 고쳐서 쓰지 않겠다는 나의 단호한 결심에 밀려 오늘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미니멀리스트로 새로 태어난 나는 오늘 또 한 번 결심한다. 앞으로는 에메랄드의 유혹에 굴하지 않기로. 꼭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품질과 디자인을 꼼꼼히 살펴보고 오래오래 쓸 물건만 집에 들이기로. 


초보 미니멀리스트가 얻은 뼈아픈 교훈: 


1. 꼭 필요한 물건만 산다. 

2. 살 거면 꼼꼼히 조사해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디자인과 고품질의 물건을 산다. 

2. 꼭 필요한 물건이라도 아주 가끔만 필요하다면 사지 않고 빌리는 걸 고려한다. 





작가의 이전글 그 노무 까르띠에가 뭐라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