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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린 Nov 15. 2022

그 노무 까르띠에가 뭐라고

엄마의 마음과 한국 살이의 숨 막힘, 그 사이

5년 동안 함께한 남자 친구와 결혼 준비를 하게 되었다. 사실 이미 동거 기간이 4년을 가뿐히 넘는 데다, 서로의 가족을 이미 여러 번 만나고 여행도 같이 한 사이라서 혼인신고만 안 했지 어느 나라에서도 사실혼으로 인정될 관계이다. 그래도 이제는 아기도 태어날 것이니 그전에 정식 절차를 밟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이번 여름에 부모님께 결혼을 하고 싶으며, 나는 프러포즈 때 받은 깔끔한 반지로 충분하므로 연말에 한국에서 남자 친구의 반지를 사줄 예정이라고 말씀드렸다. 


나의 본래 계획은 한국에서 적당한 국내 브랜드의 깔끔하고 품질 좋은 반지를 하나 구입해 남자 친구에게 선물하는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나는 주로 일주일에 두세 번씩 엄마한테 전화를 하기 때문에 엄마가 나에게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엄마가 묻는 첫 질문이 "너 반지 어디 거 받았어?"였다. 아니 어디 거를 받았냐니? 안 그래도 내가 소유욕 / 명품 욕심이 좀 없는 스님 스타일이고 남자 친구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명품 브랜드 반지를 받지 않았을 거라는 건 뻔히 알 텐데 그런 질문을 다짜고짜 던지니 자동으로 공격 모드로 전환되어 왜 그런 걸 묻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얼리를 오래 고민하며 스스로 디자인한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반지인데!


그러더니 하는 말이, 자기가 까르띠에와 티파니를 다녀왔는데 디자인도 괜찮고 가격도 나쁘지 않으니 남자 친구의 반지는 그중 하나에서 사라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처럼 주얼리를 여러 가지 가지지 않고 평생 끼게 될 반지니 좋은 곳에서 사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물론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와 내 남편이 될 사람의 반지를 왜 엄마가 정해준 곳에서 사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명품에 관심도 없고, 여전히 왜 웃돈을 주고 명품을 사야 하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내가 계속 따지고 들자 엄마는 못내 서운해하며, 자신이 혼자 매장들을 다 들르고 구경한 후 딸에게 이야기를 해주는데 "애까지 뱄으면서" "못돼 처먹어서" 따지고 든다고 난리가 났다. "아, 엄마 그랬어? 우리가 알아서 할 텐데 뭐하러~"하고 예쁘게 말할 수는 없냐고 넋두리를 한다. 자기 딴에는 굉장히 중요한 사안에 대해 미리 리서치까지 하고 의견을 제시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며 그렇게 좋으면 차라리 엄마 꺼를 사라고 쏘아붙이는 딸의 반응이 아쉬웠나 보다.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보니, 흔히 결혼할 때 하는 예물 쇼핑 등등을 딸과 하지 못하게 된 엄마가 딸이 산다는 사위 반지 하나라도 좋은 곳에서 좋은 걸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딸과 함께 이것저것 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혼자서 이곳저곳 구경하며 딸과 함께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엄마를 생각하니 이 강압적인 반지 구매 (?)에 대한 분노가 조금은 사그라든다.


어쨌든 결론은 그래서 까르띠에 매장 방문을 예약했다는 사실. 허허. 나에게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예를 들면 웨딩 밴드 구입처 같은) 효도 겸 엄마의 의견을 따라주는 편이다. 이런 것 가지고 싸우고 엄마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다. 내 인생 최초이자 유일한 까르띠에 매장 방문, 그리고 까르띠에 제품 구매가 되시겠다. 


나에게 엄마의 사랑이란 고맙고 애처롭고 또 숨 막히는 것이다. 이 넘치는 사랑이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한국에서 살 엄두도 못 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주장이 강한 엄마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기에는 내 온전한 나의 선택들로 쌓아가는 나의 인생이 너무나 소중하다. 


아, 물론 자주자주 방문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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