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유럽여행
2014년 5월 18일. 나는 다방 디자인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5년 뒤인 지금, 나는 여전히 다방 디자인팀에서 일하고 있다.
5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새로운 도전을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나에겐 매 순간이 배움의 연속이고 도전이었기에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매너리즘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했’었’다.
내가 매너리즘을 느끼기 시작한 건 별다른 계기가 없었던 것 같다.
평소처럼 기획/개발자와 논의하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업무는 비슷했고, 이미 적응이 된 터라 큰 어려움도 없었다. 하지만 여느 날처럼 피드백을 받아 수정 작업을 하던 중, 디자이너를 꿈꾸며 앞만 보고 달려왔던 대학시절부터 신입사원 시절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막연한 기대를 꿈꾸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그때와 지금을 살펴보니 변한 건 딱히 없었다.
지금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는 그렇게 처음 매너리즘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해보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려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었다.
업무 집중도도 떨어지고 방향성을 잃은 것만 같은 나는 결국, 28년 쫄보 인생을 뒤로한 채 유럽여행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첫 번째,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하루는 스위스의 한 한인숙소에서 한국인 여행객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우연히도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는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가 아마 내가 다방이라는 서비스를 가장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했던 시간이지 않을까 싶다.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한 결과물에 대한 실 사용자의 의견을 듣는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의 나는 '사용자가 필요한 디자인'보다는 '(내가 생각하기에) 사용자가 필요할 것 같은 디자인'을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두려움은 정말 잠깐 뿐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적어도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 만큼은 제대로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던 나는 항상 시도 조차 하기 전에 포기해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비슷한 연차의 동료가 새로운 분야로 이직을 하는 것을 볼 때도 나는 항상 걱정만 하고 실천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스위스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패러글라이딩을 해야 한다는 말에 겁도 없이 예약을 해버렸다.
놀이기구도 하나 제대로 못 타던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 번에 해내지 못하면 앞으로도 영영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용기 내어 발을 굴렸고 스위스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디자인 업무를 할 때도 항상 비슷했던 것 같다.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면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보다는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고 항상 해오던 디자인에 안주했다.
그렇게 내 디자인은 완벽하지도, 그렇다고 눈에 확 띄지도 않는 평범한 디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유럽여행을 계기로 앞만 보고 디자인하던 습관을 버리고 옆을 바라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옆을 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두려움이 점차 사라졌다.
항상 누가 뒤쫓아오는 것처럼 조급한 마음에 불안해하며 디자인했다면, 이제는 한 결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믿음이 없었기에 불안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확신하지 못하는 디자인으로 어떻게 유저들의 확신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떠난 여행이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일태기"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여행은 현실 도피라고 이야기 하지만 나에게 여행은 일태기를 극복하는데 어느 정도 해답을 주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보고 느끼며 경험하다 보니 내가 보는 시야도 점점 넓어지고 여유로움 속에서 잡생각들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총 4개국 19일의 여행은 디자이너 생활 5년 만에 나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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