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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방 Nov 11. 2020

“반주가 좋아” 혼술러버의 심야식당

좋은 요리주점이 있다면 소개 시켜주세요.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 혼술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처음부터 혼술을 한 것은 아니다. 자취를 시작할 당시 연남동 경의선숲길, 연트럴파크 근처에서 살았는데 유명 맛집보다는 가성비가 뛰어난 백반집 위주로만 찾아 다녔다. 


2015년 어느 금요일 저녁,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조금 늦게 퇴근했다. 산책하다가 귀가할 생각으로 지하철역에서부터 공원 길을 걸었다. 살짝 날씨가 추웠고 어두운 거리에 사람들이 참 많았다. 공원 길 따라 열린 가게마다 손님들이 북적였고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치킨과 맥주를 즐기는 사람도 보였다. 간간히 버스킹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불금이니까 당연한 풍경이었다. 


“나도 불금을 즐기고 싶다!”


누군가를 부르긴 어려울 것 같고 차라리 혼자 술을 마셔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혼자 마시고 싶진 않았다. 약간의 사람 소리가 들리는, 그런 공간에 있고 싶었다. 


방구석에서 혼자 술 마시는 중. 갬성을 살려 조명을 켜 봤다.


그렇게 들어간 곳은 연남동의 어느 자그마한 칵테일 바. 칵테일을 좋아하진 않지만 가볍게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이었다. 연세가 조금 많으신 사장님께서 주문한 마가리타 한 잔을 내주셨다. 바 자리에 혼자 앉아 마가리타를 맛봤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자연스레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퇴직한 후 좋아하는 일을 찾아 가게를 열게 되셨다는 사장님. 오랜 직장생활을 하셨을 사장님께 난 신입사원의 고충을 털었고 사장님은 처음 가게를 열면서 어려운 점을 말씀하셨다.


차가운 날씨에 산책하다가 우연히 들어간 지하의 작은 바. 그 곳에서 처음 본 사장님과의 긴 대화. 완전히 타인에게 고충을 털어놓고 받은 담백한 위로. 정적으로 흐르는 그림처럼 그 날의 기억은 따뜻했다. 혼술의 매력을 알게 된 건 그 날부터다. 


꼬치구이+맥주=꿀조합


특히 홍대 주변에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간단하게 술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요리주점이 많다. 메뉴도 참 다양하고 가게마다 추구하는 분위기도 달라서 매력적이다. 가볍게 먹기 좋은 곳은 작은 이자카야. 해산물을 좋아하기도 해 자주 찾는다. 하루는 손님이 많은 곳이라 창가의 작은 테이블에 앉게 됐다. 뒤에서는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웅성웅성 들리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기본안주로 양배추 샐러드가 나왔고 꼬치구이와 맥주를 선택했다. 여러 종류의 꼬치와 함께 맥주를 한 잔 들이키고 말했다. 

"오늘 절 힘들게 해주신 클라이언트님~ 님 덕분에 맥주가 더 맛있어요."


명란 타카나 볶음밥, 그리고 와인 한 잔


퇴근 후 혼술은 카레라이스나 볶음밥 같은 간단한 식사에다 반주를 한 잔 하는 식으로 끼니를 떼우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자주 가던 집 주변 작은 요리주점이 있었다.  주택가에 있어서 주민들이 식사 겸 술을 마시러 찾아오고 사장님께서 혼자 운영하셔서 느리게 굴러가는 곳이었다. 나 또한 퇴근 후에 이곳에 들러 명란 타카나 볶음밥을 주문해서 반주를 즐기곤 했다. 혼자 운영하시다 보니 음식이 나오길 많이 기다려야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매력이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사람들도 여유롭고 느긋해지는 공간이었다. 


닭발편육과 고구마소주. 이 곳은 책도 판다.


혼자 먹기 때문에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기도 쉽다. 알레르기도 없고 비위도 강해서 가리는 음식이 없는 편이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으로 통하는 닭발, 선지, 산낙지, 번데기, 민트초코, 고수 등도 즐겨 먹는다. 하지만 친구와 하는 식사라면 그런 음식을 선택할 수 없다. 음식 취향을 맞추는 게 의외로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


새롭게 시도해 대만족한 메뉴는 바로 닭발편육이다. 책방과 작은 술집을 겸하는 골목의 어느 식당을 찾았다. 처음 가본 곳이라 한참 메뉴판을 읽었다. 사장님께서 몇 가지 메뉴 중에서도 닭발편육을 추천해주셨다. 편육이라고 하면 돼지고기만 생각했기 때문에 신기한 마음에 주문했다. 다양한 증류주도 파는 곳이라 고구마소주도 도전했다. 그냥 닭발보다 먹기 편하고 쫀득한 맛도 더 많이 느껴졌다. 사장님의 특제 소스인 마늘땅콩버터 조합과도 궁합이 잘 맞았다. 고구마소주도 일반 소주에 비해 살짝 단맛이 나서 먹기 좋았다. 


차분한 분위기도 혼술하기에 제격이다. 벽에는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이 있고 엽서 등이 아래에 자리한 유리 테이블이 길게 놓여있다. 그곳에 손님이 앉아있으면 작고 얌전한 고양이 2마리 두리번거리며 다가온다. 작가를 꿈꿨다는 사장님의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워낙 좁은 가게라 가게 손님들과 다 함께 이야기를 했는데 공통점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늦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고구마소주처럼 은은하게 단맛이 나는 저녁이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핫와인


여전히 혼술을 좋아한다. 바쁜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릴랙스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 사회에서 종종 겪는 사람들과의 갈등에서 잠시 도피하는 기분이 든다. 특히 혼자 새로운 곳에 갔을 때 마치 책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가게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그 낯설음이 아이러니하게도 편안함을 주곤 한다. 이보다 더 확실한 소확행이 있을까?


퇴근 후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가장 행복한 걸 하기에도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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