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방 Oct 26. 2020

감자 구워먹다가 생각난 영화<마션>

※ 영화 <마션> 약스포 주의. 이미 유명한 설정 부분이지만.

에어프라이어기를 샀다. 자취 필수템이라는 동생의 말에 혹해서 인터넷 최저가로 구매했다. 택배를 받고 생각해보니 난 튀김류와 냉동식품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몇만 원 주고 산 건데 방치할 수 없어 마트에서 고구마 한 봉지를 샀다. 깨끗이 씻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한 조리 시간에 맞춰 고구마를 구웠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고구마의 달큰한 향이 원룸에 퍼졌다. 이 정도 구우면 되나? 젓가락으로 쿡 찔러보고, 에어프라이어기로 만든 군고구마를 먹어봤다. 이럴 수가, 완벽한 겉바속촉!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 구황작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완벽한 조리도구를 드디어 찾았다. 제대로 삘(feel) 받아서 감자를 5kg이나 주문했다. 어느 블로거가 5kg이면 금방 먹는다고 했는데 받아보니 열심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금방이라면서요…… 감자만 먹고 있어요.


한동안 감자를 에어프라이어기로 구워 먹었다. 그날도 ‘역시 퇴근 후엔 감맥이지!’라며 감자 2개와 맥주 한 캔을 저녁으로 때우고 있었다.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15년 개봉한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마션>이다. 주인공 마크 와트니 역을 맡은 맷 데이멋이 화성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때 연명을 위해 선택한 식량이 ‘감자’다. 그래서 영화에서 주인공이 감자를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영화 <마션>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있다. 그 이유는 이 영화를 기점으로 ‘혼영(혼자 영화 보기)’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다. 


(좌) 에어프라이어기로 구운 내 감자! (우) 네이버에서 소개하는 영화 마션


내가 가입된 통신사 멤버십 혜택 가운데 월 1회 무료 영화관람권이 있다. 하지만 당시 나의 머릿속에 영화관은 친구와의 약속장소 또는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생각했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가면 멋쩍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혜택을 누리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주말에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하얀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영화가 너무 보고 싶었다.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서비스도 없었거니와, 새로 개봉한 영화를 극장에서 꼭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폰을 들어 상영 중인 영화 중에서 평점이 높은 걸로 바로 예매하고 가장 가까운 영화관을 찾았다. 홍대 롯데시네마였던 걸로 기억한다. 주말인 데다가 위치도 홍대였기 때문에 좌석에 앉아서 주변을 보니 죄다 커플이거나 친구와 함께 보러 온 관람객들뿐이었다. 솔직히 조금 민망했다. 옆 좌석에는 10대로 보이는 학생 둘이서 광고가 끝날 때까지 수다를 떨었고 앞 좌석에는 커플이 팝콘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민망한 마음에 괜히 폰으로 인스타그램을 켜서 구경하는 척을 했다. 화성에 혼자 남은 주인공과 대조적으로 이 수많은 사람 속에 난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여 만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영화가 끝나자 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잠시 영화의 여운을 즐겼다. 우연히 고른 영화가 <마션>이었고 마침 영화 주인공도 화성에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이어서 더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주인공 아저씨,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는 그나마 친구랑 통화는 할 수 있는데.'



그날의 기억은 의외로 좋게 남았다. '혼영'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장점은 내 취향에 맞는 영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 때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예고편을 보는 순간 내 취향임을 직감하고 친구와 보러 갔다. 역시나 인생 영화 중 하나로 등극할 만큼 기대 이상으로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친구는 옆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또, 친구가 선택한 <곤지암>을 봤는데 재미있었지만 공포 영화라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혼자 영화를 보면 내 취향에만 맞으면 예매가 쉽다. 


의외로 민망함은 잠시다. 영화가 시작되면 조명이 어두워지면서 주변을 볼 필요가 없고 모두 정면의 스크린을 보느라 여념이 없어진다. 오히려 혼자 보면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가끔 영화를 보는 중에 속삭이는 친구가 있다. "방금 지나간 거 봤어?", "갑자기 주인공 왜 저래?" 말을 안 하더라도 옆에 있는 친구가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혼자라면 그럴 일이 없다. 영화 흐름이 끊기지 않아서 몰입하기 좋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된다. 특히 음악이 좋은 영화의 경우에는 긴 여운을 느끼고 올 수 있다.


아쉬운 점 한 가지는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영화에 관해 이야기 나눌 친구가 없다는 것. 작년에 <미드소마>라는 외국 영화를 혼자 보러 갔다. (완벽히 내 취향이다. 기괴하고 다소 잔인한 장면이 많아서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 같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너무 좋은데 좋다고 얘기할 곳이 없어서 답답했다. 상징적인 장면, 인상적인 비주얼, 마지막 주인공의 의미심장한 표정까지. 이야깃거리가 많은 영화였는데... 하는 수 없이 영화 유튜버들이 올린 미드소마 리뷰영상을 보면서 '그렇구나~ 이 장면이 그렇게 해석될 수 있구나.' 혹은 '그래, 이 장면 너무 좋았지.'라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감자 → 화성 → 외로움 → 혼영 → 성공적


요즘은 영화관뿐만 아니라 어딜 가는 게 어려운 시기라 집에서 최애 영화를 재탕하거나 놓쳤던 명작들을 보는 중이다. 팝콘 대신 먹을 옥수수를 사 들고 퇴근해야겠다. 오늘은 무슨 영화 보지?




매거진의 이전글 요리도 못하는 게 파전을 만들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