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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방 Oct 13. 2020

요리도 못하는 게 파전을 만들어?

지독한 곰손이 파전을 만들겠다고 재료를 샀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부쩍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음식을 집으로 포장하거나 배달 시켜 먹고 주말에는 아예 집 밖을 나오지도 않는 날도 많았다. 집순이 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오랜 기간 밖을 나가지 못하니까 정말 힘들었다. 그러던 찰나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비도 오는데 파전 먹고 싶다!


많은 요리 중에서 파전을 택한 건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요리에 비해 수월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라면 물도 못 맞추는 심각한 곰손이다. 지금도 냄비가 바뀌면 라면 끓이는 데에 애를 먹고 있다. 동생은 닭볶음탕도 뚝딱 만들어내는데 계란후라이 하나도 제대로 못 한다며 어릴 때부터 핀잔을 듣고 자랐다. (엄마, 아빠, 동생까지 요리를 잘하는데... 내 손은 누굴 닮은 거지.)


자취를 시작하면 잘 해 먹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집밥은 초기비용부터 많이 든다고 생각한다. 일단 밥솥이나 궁중 팬 같은 도구와 각종 조미료가 구비가 되어야 한다. 또 식자재를 소량으로 사면 단가가 높아져서 7,000원짜리 백반을 사 먹는 것보다 한 끼 집밥이 더 비싸게 느껴진다. 음식물쓰레기도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채소나 과일은 금방 썩어 나가고 밥솥에는 굳어버린 밥이 자리를 차지하는 시간이 많다.


그렇게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는 게 일상인 나에게 요리를 하겠다는 건 뜬금없는 일이었다. 오죽하면 동네 마트에 장 보러 나온 길에 엄마랑 통화했는데 내 계획을 들은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그냥 사 먹지?”


자주 가는 집 근처 백반집. 청국장이 무려 6천 원이다! 


꿋꿋하게 파전을 만들겠다며 포털에 ‘해물파전 레시피’를 검색해 재료를 가장 적게 쓰여 있는 블로그 글을 찾았다. 블로그에 쓰여 있는 대로 쪽파, 부침가루, 계란, 해물믹스 등 필수 재료들을 한 아름 안고 귀가했지만 뭘 먼저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때마침 고향 친구에게서 반가운 메신저가 날아왔다. 해물파전 재료를 사서 들어왔다고 했더니 한참을 크게 웃던 친구가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려달라고 했다. 


#해물파전_레시피 #따라하지_말것

1. 블로그 레시피대로 씻은 쪽파를 도마 위에 놓고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잘랐다. 불안한 마음에 친구에게 쪽파를 어떻게 손질하냐며 사진을 보내놓고서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뿌리를 잘랐다. 쪽파 뿌리를 썰어놓고 뿌듯한 마음에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는데 친구가 “쪽파 뿌리를 그렇게나 많이 잘랐어?”라며 기겁을 했다. 상해 보이는 것들을 다듬으라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아… 다 자르면 안 되는구나. 시무룩해 있으니 쪽파를 많이 사서 버려도 괜찮다며 친구가 다독였다. 


얼마 전 JTBC 예능프로그램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최양락 님도 쪽파 다듬는 중에 뿌리를 다 잘라서 배우자 팽현숙 님에게 크게 혼나는 장면을 봤다. 어떻게 그걸 몰랐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요리를 안 해본 사람에게 쪽파 손질은 상식이 아니다. 최양락 님을 보며 위안을 받았다. 


친구가 친절히 자를 부분을 알려줬는데 이걸 못 보고 쪽파 뿌리를 다 잘랐다.


2. 종이컵으로 계량한 부침가루와 계란, 물을 섞었다. 우리 집 종이컵이 큰 것인지 블로그에 쓰여 있는 대로 재료들을 넣었는데 반죽 농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사실 반죽 묽기에 대한 감조차 오지 않아서 친구에게 여러 차례 반죽 영상을 보냈다. 부침가루를 더 넣어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조금씩 추가했다. 친구 말로는 계란 대신에 튀김가루를 하면 좋다고 알려줬다. 스승님의 말을 새겨듣고 다음엔 계란 대신 튀김가루를 사야겠다.


3. 해물믹스도 두 주먹 넣었다. 처음 구매해 본 해물믹스는 신세계였다. 홍합, 새우, 오징어 등등 좋아하는 해물이 모두 들어있었다. 자취러한테는 최고의 식자재라고 생각하며 반죽에 해물믹스를 넣었다. 친구에게 해물믹스의 신세계를 자랑하려 사진을 보냈더니 잔소리가 날라왔다. 냉동이라 해물믹스를 살짝 녹여서 넣었어야 한다는 것. 나의 해물믹스는 꽝꽝 언 채로 이미 반죽에 들어가 있었다. 결국 반죽 안에서 해물믹스를 뒤적이며 살살 녹여야 했다.


4.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충분히 달궈지면 약불로 줄여 반죽을 넓게 펴주면 끝! 예상했겠지만 불 세기 조절도 실패했다. 인덕션이라 블로그에 나온 레시피처럼 되지 않았다. (내 탓은 아니오~) TV에 나오는 셰프들처럼 손 안 대고 파전을 뒤집고 싶었는데... 걸음마도 안 했는데 달리기 1등하고 싶은 꼴이라 참았다. 


숱한 실수가 있었지만, 정보통신의 발달이 내 파전을 살렸다. 메신저 앱으로 친구에게 사진과 영상을 보내고 반죽의 묽기, 해물믹스 양 등 조언을 들어서 완성한 것.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멀리 떨어진 친구와의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여가였다고 생각한다. (ㅋㅋㅋ)

“거리는 멀리, 마음은 가까이”


여러분, 제가 만든 파전이에요~


온라인으로 진행된 실시간 파전 요리 쇼가 막을 내렸다. 결과물을 보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비주얼은 꽤 그럴싸해 보인다. 비록 사 먹는 것보다 맛있지 않았고, 장장 1시간이란 시간이 소요됐고, 요리도 아바타처럼 친구가 시키는 대로 했지만, 인생 첫 파전이라 더 맛있게 느껴졌다. 먹으면서 다음엔 어떤 요리에 도전할지 고민했다. 된장찌개? 김치볶음밥? 파스타? 물론 아직 두 번째 파전을 만든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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