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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방 Nov 23. 2020

Shall we dance: 댄스학원을 등록하다

두둠칫

갓 스무 살이 된 나는 고등학생 시절을 벗지 못하고 서툴게 화장한 얼굴에 뿔테안경까지 쓰고 대학교 OT에 갔다. (지금으로썬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단한 패기였다. 대체 왜 그랬지.) 낯선 환경도, 처음 마셔보는 술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모든 신입생이 그렇듯 어버버 눈알만 굴리기 바빴다. 


OT 둘째 날, 진부하게도 신입생 장기자랑 시간이 있었다. 동기들과 조를 이뤄서 준비하는 장기자랑이라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듀엣 곡을 부르는 조도 있었고 연극 또는 코미디 쇼로 눈길을 끄는 조도 있었다. 선배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우리 조는 춤을 추게 됐다. 곡명은 <트러블 메이커(Trouble Maker)>. (2012년도라 예전 노래가….ㅎㅎ) 결론적으로 그 장기자랑 이후에 대학교 4년 내내 동아리 행사에서 춤을 춰야 했다. 뿔테안경 끼고 간 탓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학부생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 내면서부터다.




꼬꼬마 시절부터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 부모님 말에 의하면 3~4살 정도부터 아기공룡 둘리 주제곡을 부르며 웨이브를 했다고 한다.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 장면이지만. 


자연스러운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직장인이 되고서 여가생활을 위해 처음으로 한 게 댄스학원을 등록한 것은. 때는 바야흐로 2016년, 야근과 회식이 일상이던 시기다. 그 날도 어제의 회식으로 인해 쓰라린 속을 달래며 출근을 했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문득 '이렇게 살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고 싶고 활기를 찾고 싶은 맘이 강렬하게 들었다. 


퇴근하고 곧장 주변 댄스학원을 찾았다. 일주일마다 새로운 곡을 배우고 K-Pop부터 재즈, 힙합 장르까지 배울 수 있다는 설명과 깨끗한 학원 시설을 둘러보고 바로 3개월치를 등록했다. 학원 강사님이 배웅하려다가 “오늘부터 하고 가실래요?”라고 물으셨고 홀린 듯 청바지 차림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CHEER UP BABY~ CHEER UP BABY~ 좀 더 힘을 내! 


그 날 배운 곡이 생각난다. 트와이스의 <CHEER UP>이었다. 처음엔 큰 거울을 보면서 동작을 따라 하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과 춤을 추는 것도 생소했지만 신나는 노래에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모든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모 대학교 앞에 위치한 학원이라 대학생들만 있으면 뻘쭘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이돌을 꿈 꾸는 초등학생부터 어린 자녀가 있는 주부까지 수강생 나이대가 다양했다. 물론 직장인도 많았고 높은 비율은 아니었지만 남성분들도 꽤 있었다. 춤을 잘 추시는 분도 있었고 몸치이신 분도 있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그저 다들 신난 얼굴이니까. 음악이 꺼지면 부끄 모드로 되돌아 갔지만.


취미로 시작했지만 새롭게 배운 것도 많았다. 장르마다 기본스텝이며 몸을 쓰는 방법이 다 달랐다. 힙합 댄스를 알려주시던 강사님이 말씀하시길, “리듬감은 좋으신데 기본기가 없고 힘이 없으시네요.” 실제로 힙합이나 남성 아이돌 그룹 커버댄스 등 힘이 필요한 동작은 영 춤선이 나오지 않았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창피하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춤을 잘 추고 못 추는 건 신경 쓸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학원을 가면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다는 것.


댄스학원을 다니는 1년 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늦은 퇴근시간 때문에 밤 10시 수업을 참석하고 자정이 되어서야 귀가할 수 있었지만 그런 건 사소한 문제였다. 지금보다 몇 살이라도 어렸기 때문일까? 몇 시간 안 자고도 하루 종일 생기가 돌았다. (살이 빠지느냐고 묻는다면, 숨만 쉬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잘 모르겠다.) 


학원을 그만둔 후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업무 상 출장이 잦아지면서 다닐 수 없었다. 다방에 이직한 이후로 다시금 댄스 열정이 타오르고 있다. 비교적 워라밸이 보장되면서 더욱 그런 듯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때문에 지금은 어렵지만 조만간 다시 안무실 거울 앞에서 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재미 없고 힘든 운동이 싫으시다고요?
제대로 리듬 타고 싶으신 방구석 댄서라고요?
그런 분들께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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