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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방 Feb 08. 2021

향수 - 어느 체험자의 이야기

지방에서 20년을 살았던 내가 느낀 서울살이의 최대 장점은 놀거리가 가깝다는 것이다. 연극 보러 대학로에 가고, 대림미술관에서 전시도 보고, 잠실에서 야구직관도 한다. 더욱이 홍대 쪽에서 자취를 했으니 놀거리가 늘 풍부했다. (과거형으로 쓰는 건 이제는 홍대 일대를 떠났기도 하고 코로나19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니까....) SNS에서 핫한 유명한 맛집들도 걸어서 갈 수 있고 수많은 원데이 클래스가 매일같이 열린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생이 서울에 올라오는 날이면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한다. 지방에서의 놀거리는 한정돼 있다는 걸 아니까. 그곳에선 연극을 보거나 아이쇼핑을 하려면 주변의 다른 도시로 가야 했고 친구와 동네에서 놀려면 영화관, 밥, 카페 정도가 전부였다. (아! 자랑할 만한 놀거리로는 아주 시설이 좋은 아이스링크장이 있다는 건데 잠실에도 있으니까 ㅎㅎ)


코로나19가 끝나고 지방에서 친구가 서울로 놀러올 계획인 자취러이거나 서울로 놀러가고 싶은 지방러에게 추천하고 싶은 색다른 체험을 소개한다!



한복 체험


새해가 되니 어머니 카톡 프로필이 바뀌었다. 3~4년 전 나와 동생이 한복을 한 벌씩 대여해 서울 창덕궁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평소엔 들꽃이나 하늘 같은 자연친화적인 사진을 걸어두신다) 나도 잊고 있었던 사진인데 새해 또는 명절이 오면 어머니의 카톡 프로필로 선택되곤 한다. 


동생과 함께 창덕궁에서 (>_< ) b


당시를 떠올려면... 때는 2017년 5월 어느 화창한 봄날. 놀러 온 동생에게 제안했다. "한복 체험 할래?" 동생은 질색팔색 했다. SNS에 한복 체험 사진을 올린 사람들을 보여주며 설득을 했지만 동생의 떨떠름한 반응이 이어졌다. 재미없을 것 같다고 했지만 유치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강하게 주장했다. 

"나이 한두살 더 먹으면 더 꺼려질걸! 내 스물다섯을 간직하고파." 


반강제로 오케이 사인을 받고 창덕궁 나들이를 갔다. 미리 어떤 한복이 예쁜지 검색해봤는데도 한복 대여점에 들어가서 어버버 쩔쩔 맸다. 생각보다 너무 다양한 스타일과 색상이 진열돼 있었다. 주인 분의 추천을 듣고 겨우겨우 선택해 갈아입었다. 


동생은 붉은색 저고리와 노란색 치마를, 나는 흰 저고리에 진달래색 치마를 입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명절때나 입었던 한복을 십여년이 지나고 입은 것이다. 왜 경주나 전주로 여행 가서 한복, 옛날 교복 등을 입고 사진을 남기는지 알 것 같았다. 처음엔 시큰둥 하던 동생도 좋은 사진을 많이 건졌다며 행복해 했다. 



향수 공방 체험


그로부터 2년 뒤 5월 5일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동생이 또 다시 서울 나들이를 왔다. 수다를 떨다가 향수를 사고 싶다는 동생의 말에 향수 공방 체험을 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서 고민을 했는데 가게에 입장하니 마음이 달라졌다. 수십가지의 향이 쭈욱 전시돼 있고 사장님이 그 중 2~3가지를 고르라고 하셨다. 동생과 난 일일히 다 향을 맡아봤다. 워낙 향이 다양해서 한참을 킁킁 거렸다. 사장님은 자꾸 여러가지 향을 맡으면 더 안 느껴지니까 중간중간 커피콩 냄새를 맡아라고 조언하셨다.



동생과 내가 각각 선택한 향을 기계로 섞어주셨다. 마지막 미션은 향수에 이름을 붙이는 것. 사장님 다른 분들은 어떤 식으로 이름 만들어요? 라고 물었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좋아하는 문구나 향수 제조한 날짜 등으로 많이 한다고 했다. 00의 향수, 2017년 5월, 라벤더꽃향기... 다양한 이름으로 만든다고. 그렇게 동생은 '스물여섯날의 취향'으로, 나는 '스물일곱, 어린이'로 이름 붙였다. 특히나 동생은 난생처음 향수라는 게 생겨서 너무 기뻐했다. 


29살이 된 지금, 저 사진들을 보니 '그때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스물다섯 때 한복을 입어본 것... 스물일곱에 나만의 향수를 만들어 본 것... 나중에 기억에 남을 만한 체험을 올해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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