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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방 Jan 05. 2021

중고로 산 밥솥으로 연명한 주말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다소 쌀쌀한 날씨였다. 2020년 2월 어느날 합정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혹시 밥솥...?" 2만 원을 건네자 그 분은 밥솥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셨다. 


그렇다. 중고거래로 미니 전기밥솥을 샀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하기 전이었다. 스무살 때부터 밥을 사먹어 버릇해 슬슬 지겨워졌고 가끔이라도 집밥을 먹자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시장에서 반찬을 사고 편의점에서 즉석밥을 사면 되는 일이지만 편의점에서 즉석밥을 사면 개당 2천 원 정도다. 인터넷 최저가로 구매하면 개당 800~900원 꼴로 저렴해지긴 하지만 밥솥을 사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미니 전기밥솥은 저렴할거라고 생각했지만 5~6만 원 정도했다. 처음 자취를 할 때 부모님께서 전기밥솥을 사주셨다. 하지만 대학생이 뭐 그리 바쁜지 집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PT과제 준비 때문에 매일 같이 조모임을 했고 동아리 행사는 끊이질 않았다. 전기밥솥에는 갓 지은 밥보다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밥이 차지하는 시간이 많았다. 딱딱한 밥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간다. 결국 집순이 친구에게 주면서 오랜 기간 내 자취방에는 밥솥이 없었다.


물론 더 저렴한 제품도 있었지만 밥맛을 생각하면 아무거나 고를 수 없었다. 엄마 역시 밥솥이 밥맛을 결정한다며 비싼 제품을 자꾸 추천하셨다. 그냥 즉석밥을 먹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중고거래 앱을 열었다. 전기밥솥을 검색하자 쭈욱 제품들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눈 여겨봤던 제품이 1~2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중고거래를 하게 됐다.


요리는 못 하지만 주방에 대한 로망은 있다.

밥솥을 사서 밥을 해먹겠다는 아이디어는 합리적인 판단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음식물쓰레기에다, 먹고, 치우고...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벌어지면서 '밥 해먹기'는 슬기로운 집콕생활을 위한 나만의 놀거리가 되었다. 약속이 뚝 끊기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중에는 주말 내내 6평짜리 원룸에 틀어박혀 있었다. 집에서 할거리가 필요한데 쌀을 씻고, 밥을 짓고, 식사하고, 설거지하는 것조차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이라 소꿉놀이마냥 소소하게 재미있다. 


특히 맛있는 쌀에 관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전기밥솥이라 일반 마트에서 쌀을 사왔더니 밥맛이 떨어졌다. 집으로 초대한 친구가 같이 밥을 먹다가 도정한지 얼마 안된 쌀을 사면 훨씬 나을 거라고 말해줬고 추천 받은 전라도의 유명한 신동진쌀을 전화로 주문했다. 확실히 맛이 달랐다. 밥알이 고슬고슬한 게 내 입에 딱 좋았다. 원래는 이틀만 지나면 밥솥에서 밥이 누렇게 변했는데 신기하게도 쌀을 바꾸고 나니 밥도 조금 더 오래갔다. 


시장에서 반찬을 고르는 것도 재미있다. 시장 반찬가게도 시즌별로 판매하는 게 다르다. 제철 음식이 주로 나오고 명절을 앞두고는 차례음식을 판다. 지난 추석 때도 몇 가지 전을 사서 먹었다. 집마다 차례음식이 달라서 더 색다르게 느껴졌다. (우리집은 쥐포튀김, 상어산적, 고래산적 등이 명절음식인데 친구들은 먹어본 적 없다고 했다) 가끔 큰 맘 먹고 떡갈비나 소불고기를 사서 굽기도 한다. 



오늘 저녁엔 무슨 반찬을 사들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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