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방 Dec 21. 2020

너무 심심해서 베이킹

역시 요리엔 소질이 없나보다

'코로나 블루'가 찾아왔다. 1~2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던 팬데믹 사태는 예상보다 장기화 됐고 평소 활동적이었던 나에게 우울감을 안겼다. 집에서 무기력하게 코로나19 뉴스 기사를 계속 듣고 있는 날이 많아졌고 평소보다 예민해졌다. 또 문득 가슴이 답답하게 느껴져서 괴로웠다. 그렇다고 코로나19 유행 시점에 그만 둔 스포츠센터를 나갈 수 없었다. 당시 헬스장 등에서 코로나19 확산 사례가 증가했고 뉴스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는 바람에 겁이 났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베이킹 수업 들으러 갈래?"


방송댄스, 스쿼시 등 그동안 활동적인 취미만 가져본 나에게 베이킹 클래스는 심리적 거리가 있는 활동이었다. 솔직하게는 코로나19 사태만 아니었으면 막연히 '베이킹 한번 해보고 싶다'로만 끝났을 것이다. 평소 요리는 고사하고 계란후라이 하나도 예쁘게 못 만드는 내가 빵을 만든다니. SNS 상에서 짤로만 보던 'X손이 만든 빵'을 보게 될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10주간의 베이킹 클래스가 시작됐다.




요알못인 나에게 베이킹 클래스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뭐라도 조금 나아진 점이 있다! (자존감 뿜뿜)


베이킹 수업 첫 날에는 가장 기본이라는 쿠키를 만들었다. 엄청 기대를 하고 먹은 쿠키는 예상외로 맛이 없었다. 모양도 괜찮았고 계량과 굽는 건 선생님이 해주셔서 맛이 없을리가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베이커리에서 사 먹는 그 맛이 안 났다. 내가 한 건 반죽과 성형 뿐인데 그렇다면 문제는 '반죽'이다. 


그날은 엄청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엉망.


반죽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내 머릿속 베이킹 반죽은 밀가루, 버터, 설탕 등 여러 재료를 마구 섞는 것이었다. 마구 섞는 게 아니라 재료마다 순서가 있고 심지어 속도전이라는 걸 몰랐다. 심지어 전동 휘핑기를 사용해서 재료들을 섞는데도 힘이 엄청 많이 들었다. 반죽할 때면 선생님은 마치 훈련소 조교처럼 "더 빨리!"라고 외치셨다. 


초반 몇 주간은 반죽이 실패했다. 선생님이 옆에서 가르쳐 주셔도 팔 힘만 들고 제대로 밀가루와 재료가 섞이지 않았다. "밀가루에 버터가 안들어가요, 선생님."이라고 매번 SOS를 쳤고 팔을 빨리 움직이라는 말을 계속 들었다. 유난히 반죽을 제대로 못한 쿠키랑 스콘 등은 밀가루 맛이 많이 났다. 


그렇게 몇 주간의 수업이 지나고, 전혀 늘 것 같지 않던 나도 반죽하는 요령이 생겼다. 요령이라는 말을 감히 붙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팔 힘도 덜 들고 반죽도 선생님의 것과 엇비슷하게 나왔다. 


스콘은 아쉬움이 많았다. 반죽을 더 잘 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딸기잼을 바르니 JMT


베이킹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뜨끈한 빵을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킹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먹는 따뜻한 빵...!! 그래, 이 갓구운 빵을 먹으려고 시작한 수업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맛이 극대화 되었던 건 '퐁당쇼콜라'다. 뜨끈뜨끈한 퐁당쇼콜라를 스푼으로 쿡 찌르니 초코가 와르르 흘렀다. 당분이 머리 끝까지 올라오는 그 짜릿한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갓 구운 따끈따끈한 빵을 먹는 기쁨!


겨울은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 느낌 나는 구겔호프. 가장 반응이 좋았다.


세 번째는 월요병을 이겨낸 것.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베이킹 수업을 월요반으로 신청하게 됐다. 인원이 소수였기 때문. 월요일마다 퇴근 후에 부리나케 달려가 베이킹을 했다. 직장인이 되고서 만년 월요병에 시달렸는데 10주간은 잠시 병을 잊은 채 살았다. 오히려 월요일을 기다리는 부작용(?)까지 생겼다. 새로운 걸 해본다는 생각 때문인지 뿌듯함이 더욱 컸다. 


최애하는 애플파이!! 이건 정말 파는 것보다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입맛에 맞게 재료를 아낌없이 쏟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파이를 만드는 수업에서 선생님이 "계피가루 넣고 싶으신 만큼 넣으세요."라고 하셨고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듬뿍 계피를 넣었다. 계피와 함께 졸인 사과를 파이지에다가 와르르 쏟았다. 당도도 적당하고 사과 맛이 풍부한 애플파이 완성! 내가 먹어본 애플파이 중에 가장 기분 좋은 맛이 났다. 



'베이킹이 이렇게나 재미있을수가! 왜 진작 안했지?'

'와, 내가 쿠키를 만들다니. 너무 뿌듯해.'

'근데... 사 먹는게 낫겠는걸?'


어느덧 10주간의 수업이 끝났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제빵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됐다.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소시지빵, 초코쿠키, 소보로빵... 반죽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특히 베이킹 수업 이후 지하철 역내에 있는 빵집을 지날 때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 1,000원 짜리 빵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지 알게 됐으니 말이다. 


제빵하시는 분들 리스펙! 전 열심히 사 먹을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봉사활동,핑크런 – 작은 도움이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