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
화면을 가득 채운 거친 색, 의미를 알 수 없는 상징과 단어들,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짓궂은 캐릭터들까지. 한 그림 안에 여러 단어, 상징과 기호, 이미지의 파편들이 반복되고 흩어져 있다. '음, 이건 무슨 의미일까?' 왠지 모를 압도감과 함께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오디오 가이드를 결제하고, 다시 작품을 천천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아, 이 해골/가면은, 인물은 이런 의미구나.' 귀로는 설명을 열심히 듣고, 눈으로는 작품 속 상징들을 부지런히 찾으며 작품을 감상했다. 그런데 전시 중반에 들어설 무렵 왠지 모를 피곤함이 몰려왔다.
바스키아의 회화 속 단어와 알파벳은 완결된 문장이 아니다. 이러한 불완전성은 오히려 강한 시각적 에너지를 발생시키며, 언어를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시각적 경험으로 작동하게 만든다.
바스키아의 예술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끝없는 탐구의 과정이다. 그것은 읽는 텍스트가 아니라, 듣고, 보고, 느껴야 하는 언어다.
작품을 감상할수록 더해졌던 피로감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작품을 느끼기에 앞서 작품 속 의미를 먼저 찾고 있었다. 또다시 해석하고 정의하려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며, 며칠 전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에 잠들지 못했던 밤이 떠올랐다.
새벽 두 시 잠을 깼다. 고요함 속에 내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소리만 들려왔다. '이상하다. 꽤 오랫동안 편히 잠들었는데, 최근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나? 콘텐츠가 안 풀려서 그런가?' 어느새 머릿속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설명할 수 있는 원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잠도 오지 않고, gpt로 다시 잠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문장 앞에 마음이 멈춰 섰다.
지금 이걸 분석하려 하지 말고, 몸에 이렇게 알려줘. 속으로 천천히 '아, 내가 좀 서운했구나.' 그리고 한 번만, 손을 가슴 위에 올리고 후— 하고 길게 내쉬어. 몸은 이해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내려와.
무언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섬세하고 살피고 경험의 의미를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지나치게 모든 감정과 경험을 정리하고 가려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때로는 무질서 속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감정의 원인을 분석하고,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몸이 아직 말을 다 하지 못했는데, 머리가 먼저 정리하려고 하는 나 자신을 마주한 밤이었다.
'그래, 가이드를 들으며 작품의 의미를 알고 해석하기 전에, 작품을 음미하는 시간을 나에게 허락하자.' 귀에 있던 이어폰을 내려놓고, 바스키아의 작품을 다시 바라봤다. 삐뚤빼뚤 적힌 단어들과 이미지들, 끊어진 문장, 인물을 가리며 덧칠해져 있는 색상들- 불완전성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탐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 같았다.
때로는 혼란한 가운데서도 내 몸과 마음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감정과 경험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의미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모든 것을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갈 수 있길,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먼저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