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데우지 못하는 투명한 망토를 얻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by 샴푸보다퍼퓸

2025년 9월 18일


“진정성과 따뜻한 마음으로 만들어가는 세상“

“우리가 바라고 이루어갈 걸음에 함께 할 당신을 기다립니다.”

- 자격조건 없음 -



이름 모를 회사의 모집 공고를 보고 정확히 무슨 면접인지 몰랐지만 나는 왠지 모를 끌림에 면접에 지원을 했다. 한 번은 잠결에 버튼을 잘못 누른 것 같아 정신이 조금 차려진 뒤 한번 더 지원했다.


두 번째 지원을 할 때 다시 한번 모집 내용을 확인했지만 뚜렷하고 명확한 지원자격은 없었고, 그저 진정성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다는 문구만이 정성 어리게 적혀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면접날이 되어 나는 면접 장소로 향했다.

나는 마지막 순서였는지 내 앞에 많은 사람들이 면접장에 들어가는 걸 지켜보며 나는 계속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내 차례가 오지 않자, 혹여나 지원이 되지 않은 걸까 하는 마음에, 안내해 주는 직원에게 찾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혹시 지원이 안되었나요? 오래 기다렸는데 호명이 안되어서요..”


확인했을 때 잠결에 오타가 났었는지 전공을 쓰는 칸에 한 번은 바이올림, 그리고 두 번째는 바이올린이라고 적힌 채 예상대로 두 번 지원이 되어있었다.

나는 지원이 되었다는 걸 확인한 후 ‘기다리다 보면 내 차례가 오겠지’ 하는 나름 후련한 마음으로 다시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면접이 진행이 되는 듯했고, 무엇을 준비해오라는 말도 없었기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있었다. 내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무엇을 꿈꾸며 살아가는지 어떻게 말로 전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항상 가지고 다니며 떠오르는 생각이나 일기를 기록하는 나의 작은 수첩, 윤동주의 서시가 앞에 적힌 조그맣고 얇은 수첩을 가방에서 꺼내 시를 한번 읽어보았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지원번호 00번 님, 면접장 앞으로 오세요”

드디어 내가 호명되고 나는 멀리서 계속 바라보던 면접장 앞으로 향했다. 면접장은 커다란 하나의 룸이었는데 널찍한 공간 끝에 계단을 조금 오르면 통유리창으로 된 방음이 잘 되는 듯 되지 않는 커다란 방이 있었다. 면접장소는 바로 그 방이었고, 통유리창으로 되어있는 덕에 면접관의 모습과 면접을 보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새어 나오는 화기애애한 웃음소리들로 나는 더욱 긴장을 풀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그 문 앞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고 모든 면접관들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아 드디어 딱 맞는 사람이 왔네, 됐다 됐어.” 하하 호호 자기들끼리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한 채.


그중에 맑은 눈을 장착했지만 어딘가 검은 빛깔을 한 면접 담당자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말끝을 흐리며 말을 했다.

“아, 저희가 간판을 뽑는 건데… 이미 내정된 사람이 있어서.. ㅇㅇㅇ 아시죠? 저희가 아나운서도 필요하고 뭐.. 조금 유명한 사람이 와서 그 사람이 하게 됐습니다.”


그 면접의 취지와 슬로건은 참 인간적인 것이었는데, 속내는 다른 행태에 좀 어이가 없었다.

결국 말과 행해지는 일들은 참 달랐다.


무언가 말과는 분명히 다른, 진짜 속마음을 가리기 위해 사람들은 마음이 데워질 만한 말들을 걸친다.

그 회사가 걸쳐 내걸었던 진정성과 따뜻한 마음으로 만들어가는 세상이라는 말. 그것을 마음 깊이 꿈꾸며 작지만 진심 어린 정직한 따뜻함으로 언제나 존재하고 싶은 나는, 내가 꾸는 그 꿈, 그런 나의 마음이 가소롭게 짓밟혀 차디 찬 수치심이 온몸에 퍼졌다.

나는 그 맑은 눈의 남자에게 그 회사의 이름을 다시 한번 물었고, 꼭 잘 되세요~라는 한마디를 하고 장소를 떠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와 함께 순서를 기다리던 지원자 한 명과 그와 동행한 남자도 한 마디씩 했다.

“아니, 그래도 면접 보러 왔으면 기회는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이게 뭐 하는 거예요?”


그 장소의 청소를 맡아하는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도 그 상황을 지켜보고는 내 쪽으로 와 그들에게 부당하다며 말을 거들었다.

그 할머니는 나에게 너 다음에 꼭 이 회사의 면접 다시 보라며, 이게 꼭 되는 것을 너의 목표로 하라며 나에게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맑은 눈 그리고 검은 빛깔의 남자의 말에 꺼내기 어려운 수치심을 느껴 빨리 그 장소를 떠나려던 나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그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나는 딱히 별 생각이 없는데, 나는 내 얼굴과 이름을 알리려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부당함에 대한 분노보다는 역시 그럼 그렇지, 따뜻해 보이는 말을 걸쳤지만 그건 검은 무언가를 가리고 감추기 위한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세상의 행태에 또 한 번 질려버린, 그리고 알 수 없는 존재의 수치심에 벙쪄있던 나를 대신해 상기되어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던 할머니의 말의 뜻은, ‘쟤네들이 너를 함부로 하지 못할 만큼 너에게 쩔쩔맬 만큼, 오늘을 후회하게 해라’라는 말이었던 것 같았다.




마음을 데우지 못하는 투명한 망토를 걸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친절한 마음을 건네어도 친절한 마음으로 답하지 않는 세상에 이제는 지쳐버린, 그러나 끝내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친절하고 싶은 작은 어린아이는 무엇을 꿈꾸며,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