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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 Nov 20. 2015

오래된 집에 머물다

Prologue : 공간에 대하여  /  작고 오래된 집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것저것 잘하는 일이 무지 많아 나아갈 갈피를 잡지 못하던 너와 말도 행동도 모두 느리지만, 해보고 싶은 건 무지 많아 정신없던 나. 늘 이성적인 너와 끝없이 감성적인 나. 나무 같은 너와 물 같은 내가 생각하는 삶, 그리고 그 삶을 살아내기 위해 우리가 수개월 뚝딱이며 만든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느리지만 나태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재미있지만 시끄럽지 않고, 철학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삶을 위한 공간 만들기


수개월간 낡고 오래된 집을 고쳐온 너와 나의 날들의 기록




프롤로그 : 공간에 대하여 (Written by Jay_)



  나는 예전부터 공간에 대한 나만의 생각들로 종종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아마도 나의 방, 나만의 공간을 꿈꾸던 것에서부터 시작된 듯하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공간이 있음을 바랐던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다소 방랑자 기질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정착을 바라기도 한다. 사실 이 점은 한동안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공간을 만들고 그 모든 것을 소유하는 삶과 평소에 원했던 간소한 삶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은 아직도 그 점에 대한 해답은 얻지 못하였고 다만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고 느껴보고 있다.


 지난 8개월은 나에게 공간과 집이 주는 의미를 더욱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거의 매일 집에 붙어 있으면서 알게 되는 사소한 것들, 해가 어떻게 뜨고 지는지, 비는 언제나 낭만적이기만 한 건지, 나무가 왜 꼭 필요한지, 바람은 집안 어디로 흘러가는지.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집이 되었고 우리가 사는 공간이 되었다. 그렇기에 지난 시간은 나에겐 큰 도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작은 힌트를 얻은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집에 머무는 모든 사람과 우리가 사는 집, 그리고 늘 우리를 둘러싼 이 공간이라는 것에 대하여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 집을 수리하는 일이 오롯이 전문가의 영역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들의 편의나 경제성보다는 우리의 입맛에 맞게, 필요하면 묻고 배우면서 일을 진행했다. 모든 과정이 어려웠고 난감할 때도 많았지만 모든 일은 다 그에 맞는 해결책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에 비례하는 만족감과 기쁨이 뒤따랐다.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사람을 충분히 변화시킨다. 


첫 두달의 공사 끝에 우리의 보금자리가 완성되었다. 겨울이었고, 작은 난로 하나로도 우리는 충분히 따뜻했고, 행복했다.

 






# 작고 오래된 집



  왜일까? 나는 어려서부터 줄곧 제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내 나이 스물다섯, 이제 막 인도에서의 반년을 뒤로하고 돌아온 나는 무작정  또다시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제주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 곳에서 J를 만났다. 나는 "제주에 살고 싶어."라고 말했고, J는 "나는 어디라도 상관없어. 어디냐가 아니라 누구랑 함께인지가  중요하니까."라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 '귤'이라 부르는 섬. 제주에 살게 되었다. 


이 100살 먹은 집과 내가 처음 만난 날. 가을이었고, 마당 감나무에 땡감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나는 대학공부를 마치기 위해 육지 인천 집에 있었고, J 혼자 제주에 남아  이곳저곳 우리가 적을 두고 살아갈 공간을 찾아다니던 그런 날들이었다. 어느 날, 제주의 남서쪽 마을에 작고 아주 오래된 집을 찾았다는 J의 연락을 받았다. 작은 여러 개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가장 오래된 안채는 100년 가까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직접 가서 보지도 못했지만, 꽤나 마음에 들어하는 J의 모습에 고민할 틈도 없이 오케이! 를 외쳤고, 그렇게 우리는 해가 뜨는 동쪽 마을에서 해가 지는 서쪽 마을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우리의 사서 고생도 시작되었다.



  100년 가까이 된 이 건물이 바로 안채의 처음 모습이다. 사실 내가 이 집을 찾았던 아주 처음에는 마당에 풀이 무성하여 집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이 집은 많이 낡아 있었고,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지도 오래되어 풀이 무성하던 안채 마당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안채 마당에는 왼쪽에 보이는 100년 가까이된 안채 건물과 작은 창고 세 동이 함께 놓여있다. 크지 않은 땅덩어리에 자그마한 건물들이 너무 가깝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양이 참 좋았다. 

 무엇보다도 100년 가까이 된 집이자 우리 사서 고생의 주인공인 안채는 처음부터 골칫덩이 었다. 우리가 오래된 집을 고치겠다는 소문을 듣고 구경온 지인들은 안채를 보자마자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한 명도 빠짐없이 그냥 허물어 버리고, 새로 건물을 올리라는 소리를 했다.  이유인즉슨, 집이 너무 낡아 고쳐도 시간만 오래 걸리고, 고생만 더 하고, 돈만 많이 들고, 새로 짓는 니만 못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J와 나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하지만 도저히 안채 건물을 허물 수는 없었다. 길지 않지만 한 동안 제주에 지내오면서 여기저기 올라가는 비까 번쩍한 신축건물들을 수 없이 봐왔고, 이처럼 제주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을 막무가내로 짓는 사람들에게 약간 화가 나있기도 했다. 게다가 이제 갓 30년을 산 J와 30년도 채 살지 못한 내가 무슨 권리로 100년을 산 이 오랜 집을 허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재미없잖아. 너도나도 힘쓰는 신축건물 올리기에 우리까지 합세해야겠어?


 손재주는 있지만 고작 두 달 목수 삼춘 따라다닌 게 전부인 J. 살면서 못질 한 번 안 해본 나. 우리 둘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할 새도 없이 우리의 사서 고생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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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 : http://blog.naver.com/dab_eee

제주 남서쪽 조용한 마을 모슬포에 '민박 맨도롱또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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