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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 Nov 20. 2015

100살 넘은 나무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

다시 처음으로 : 철거 

느리지만 나태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재미있지만 시끄럽지 않고, 철학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삶을 위한 공간 만들기.





다시 처음으로 : 철거

(2.17~21 철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밑 작업이 필요하다(고 J가 말했다.). 그리고, 밑 작업에 들어가는 데에는 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바깥채 공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흙먼지 날리는 작업을 하려니 영 마음이 잡히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100살이 된 안채에서 필요 없는 내장과 구조들을 모조리 떼어내어야 했다. 바깥채 공사할 때의 벽지 제거의 악몽이 다시금 떠올랐다.

안채 거실의 천정 합판을 떼어내는 J

 가장 먼저, 안채 지붕의 구조(대들보와 서까래)가 튼튼하게 버텨주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천정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1차로 천정의 합판을 모두 떼어내면, 안에 각목(현장에서는 '다루끼'라고 불린다. 아마도 일본식 명칭의 잔해인 것 같다.)으로 상을 대어 놓은 것이 나온다. 여기서  또다시 고민에 부딪힌다. '상을 살리고 합판을 새로 쳐서 깔끔하게 천정 마감을 할 것인가. 혹은 모두 제거하고 대들보와 서까래를 살릴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실제로 천정을 모두 트고 서까래를 살리게 되면 그만큼 단열효과가 줄어든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욱 더울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상을 그대로 두고 천정을 마감하자니, 천고가 너무 낮아 생활하기 불편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서까래를 살려 옛집의 멋을 살릴 수 없다는 안타까운 점이 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서까래를 드러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여름철 더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차차 고민해보기로 했다. 



각목들을 제거하고 나니, 안쪽에 또 합판들이 나왔다. 그것들을 제거하니 수십 겹의 짱짱한 벽지들이 또 나왔다. 약 100년간 덧붙여진 벽지들이 이 집을 추위로부터 막아주었겠지.




100살 넘은 나무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



 천정에 붙은 벽지를 열심히 떼어내고 나니, 드디어 대들보와 서까래, 흙을 바른 태초의 천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집이 워낙 오래되어 나무들이 다 상하지는 않았을까 많이 걱정했는데, 실제 그 모습을 드러낸 서까래들은 생각보다 상태가 매우 괜찮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얼마 되지 않은 나무들보다 오랜 세월을 보내온 나무들이 더 튼튼하고 견고하다고 한다. 구들장에 불을 때어 나무들이 까맣게 그을렸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벌레를 먹지 않고 오랜 세월을 튼튼하게 이 집을 받치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천정에 말린 흙의 상태도 생각보다 매우 괜찮았다. 오랜 세월을 다져지고 굳어진 모습으로 천정에 붙어있었다. 물론,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부분은 보수해주기로 했다. 이 오래된 집을 과연 우리 손으로 고쳐서 살릴 수 있을까.. 하던 걱정들이 100년 가까운 세월을 튼튼하게 버텨주고 있는 천정의 나무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조금씩 사라져갔다. 

 

 실제로,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다른 철거한 집의 대들보나 서까래를 그대로 들고 와 다시 썼다고 한다. 그러니, 어쩌면 이 나무는 이 집이 지내온 세월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지내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오랜 세월을  그 거센 제주의 바람을 맞아오며 이 집을 지켜온 것이다. 가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나 상황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결정해버리곤 한다. 100년이 된 이 집이 너무 오래 되었으니, 분명히 그 속까지도 많이 상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부숴버리고 새로 건물을 올리라고 얘기하는 것 또한 그렇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 이 오랜 보물섬 같은 집을 부숴버렸다면, 아마 이 오랜 세월을 견고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 나무들이 썩을 대로 썩어있을 거라 생각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 생각처럼 그리 가볍거나, 약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콘크리트나 다른 재료들 보다도 훨씬 더 강하고, 견고하고, 따뜻하고, 인내심이 있는 것이 바로 자연에서 온 것들이다. 


 흙이나 돌, 그리고 나무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100년 된 집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나무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큰 방(왼)과 작은방(오른)의 철거 작업

큰 방은 천정을 뜯어보니, 거실보다는 흙의 상태가 나빠 보였다. 떨어져 나온 부분이 꽤 많았다. 작은 방은 천정을 뜯어내지 않고, 그대로 보수해주기로 했다. 작고 아담한 느낌의 방이 될 것이다. 




거실의 벽지를 떼어내는 작업

수십 년 간 덧붙여온 벽지들을 떼어내는데, 분명 오래된 것들인데 어찌나 예쁜 문양들이던지! 벽지를 떼어내는 내내 감탄이 이어졌다. 이대로 다 태워버리기엔 아까워 조그씩 떼어내어 남겨두기로 했다. 우리의 보물이 하나 더 늘었다. 









Instagram : mendolong_hostel

Blog : http://blog.naver.com/dab_e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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