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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an 24. 2022

아웃스타그램: 또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인스타그램을 안 한 지 3일째 되는 날

내가 인스타그램을 지운 이유

  난생처음 헬스를 다니게 되었다. 평생 운동이라고는 몰랐는데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워져서야 큰일 났다 싶었다. 온통 닭가슴살만 걸어 다니고 무시무시한 운동기구들 속으로 쭈뼛대며 들어가는 내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눈치보기는 사방팔방에 깔린 거울을 보자 끝났다.


'스토리 업로드할까?'


  거울 안 내 모습을 보고는 그새 단념했다. 헬스장 이름이 크게 박힌 촌스러운 운동복에 가는 팔다리에 배만 볼록한 내 모습이 영 보기 싫었다. 게다가 다닌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대놓고 티를 내는 건 헬스장 운동복보다도 유치하고 촌스러웠다. 며칠 째 업로드하지 않아서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모른 척, 쿨한 척, 자랑거리가 있지만 바쁜 척하기로 했다. 바늘에 찔리면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되니깐. 정말. 진짜. 그러기로 했는데, 이내 머릿속에는 생각의 쓰나미가 몰아쳐서 나를 몰아붙였다.


알고 보니 내 바늘은 쇠파이프


'요즘 진짜 어디 놀러 가지도 못했네.'

'누굴 만날 약속도 없고.'

'만날 2-3시에 헬스장에 있다니 너무 한가한데.'


  내가 싫어졌다. 너무 한가한 것 같고, 생산적이지 못한 것 같고(근육 생산에 집중해야 했는데), 친구도 없는 사람 같고, 이윽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 멍하니 러닝머신을 달렸다. 그런 내 맘을 알았는지 친구의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을 배신하듯 그나마 하나 있던 약속을 미루자는 연락이었다. 최대한 쿨하게 그러자 했다. 나는 또 그렇게 공허하게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그리고 약속을 미룬 이유도 알게 됐다. 다른 친구를 먼저 만나야 하기 때문에.


'내가 선약일 텐데. 내가 덜 중요하니?'


  상심한 마음을 달랠 방도가 없었다. 하필 절친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남자 친구는 여행 중이라 투덜댈 상대도 없었다. 그래서 애꿎은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하나하나 다 지우고 분에 못 이겨 그냥 인스타그램을 지워버렸다.




아웃스타그램, 3일간의 기분

허전해... 공허해... 이상해...


  첫날은 계속 속이 상했다. 막 가슴을 누가 짓이기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이렇게 속상한 이유도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와중에도 누군가 내가 인스타그램을 지운 걸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이내 단념하고 인스타그램 중독을 이겨내 보기로 했다.


  둘째 날은 어제보단 한결 가벼운 마음이었다. 일상 공유용으로는 한물 간 페이스북은 지우지 않아서 그랬다. 시시콜콜한 가십거리를 혼자 잘근잘근 맛보며 웃고 울고 했다. 그마저도 요즘은 광고가 더 많아서 조금 보다가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혹 나와 같은 이유로 아웃스타그램을 도전하는데, 금단 증상이 올 것 같은 사람은 페이스북을 해보길 추천한다. 이게 맞나?)


  셋째 날엔 남자 친구에게 인스타그램을 지웠다고 말했다. 그와의 카톡창은 종종 메모장이 되는데 그에게 그동안의 일을 털어놓으며 인스타그램 삭제 소감과 함께 내 기분을 정돈했다. 내가 '아웃스타그램'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과 좋은 점이 꽤 있다는 걸 브런치에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웃스타그램을 하면 좋은 점

  너무 심심한데 습관적으로 들어갈 곳이 없으니 밖으로 나와야 했다. 괜히 엄마 옆에 붙어 시시하고 재미없는 농담 따먹기를 했다. 엄마는 내 유머에 질세라 술에 취해 고성방가 하는 아저씨를 두고 '에이그, 센 척 하기는. 누가 머리 한 대 치면 거꾸러질 거면서. 벽돌 저 앞에 있던데.'라고 말했다. 아주 배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엄마랑도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깔깔댈 수 있구나 했다.


  또 나를 알았다. 나는 참 다른 사람 눈을 많이 신경 쓴다. 그래서 어딜 가든 화장을 했다. 인스타그램의 정사각형 피드 속에 갇힌 사람처럼. 그런데 아웃스타그램을 한 동안에는 민낯으로 다녔다. 자꾸 보다 보니 익숙해졌는지 내 반쪽짜리 눈썹과 핏기 없는 입술이 조금 귀엽기까지 했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로션만 바르고 나간다는 건 정말 자유롭고 행복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정말 남겨두고 싶었던 건, '알 수도 있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좋을 때도 있다'는 거다. 이름만 혹은 얼굴만 아는 지인들의 스토리나 게시물을 보지 않는 건 생각보다 정신건강에 좋다. 날씬한 친구를 보며 동그래진 나를 비난하지 않고, 여행 간 이들을 보며 집콕인 나를 비관하지 않고, 와인잔을 기울이는 인싸들을 보며 포도주스나 홀짝이는 그럴싸인 나를 연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뭐랄까. 내 마음을 굳이 형상화한다면, 찬물에 채 녹지 못한 설탕이 혼자 살살 데워진 물에 노곤하게 녹은 느낌?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다.)




다시 인스타그램을 깔 것 같지만
요리 똥손에게서 나온 기적입니다. 비웃지 말아 주세요.

  물론 자기표현의 본능은 계속 꿈틀거린다. 오랜만에 준비한 월남쌈 재료들이 너무 예쁘게 플레이팅 되어 있어서 사진을 찍었지만 올릴 곳은 없었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냥 스스로 기특해하기로 했다. 1월에는 내가 월남쌈도 해 먹었고, 손톱도 빨갛게 칠하고, 딸기를 무진장 먹었고, 학교 후배와 근사한 점심도 먹었구나! 하며 말이다. 인스타를 하며 핑계 댔던 '기록'을 실천하며 조금씩 아웃스타그램 중이다.




epilogue.


- 미뤄진 약속이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내가 너에게 중요하지 않다면 나도 그렇게 집착하지 않을래!

- 내가 멀리 있어도 내게 트러플 감자칩을 맛보라며 택배로 보내주는 소중한 친구가 있다.

- 위안이 되는 문자서비스를 신청해주는 고마운 친구도 있다.

- 아웃스타그램은 남자친구가 명명(?)해줬다.

- 인스타그램 대신 자꾸 쇼핑앱에 들어간다. 쇼핑 중독은 어떻게 치료하죠? (feat. 신현준 금연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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