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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un 26. 2022

내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 다시 찾아볼 이야기

행복한 사람 되기가 아니라 행복한 순간 찾기 ^^

  요즘 도통 기운이 나질 않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모든 일이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잘 굴러간 덕이다. 일이 수월해지니 자신감이 넘치고, 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잘 챙겼다. 여유가 생겼다. 근데 여유란 놈이 내게만은 참 요상하게 굴었다. 


  '이제 다 쉬었지 않아?'

  '이제 뭐할 거야?'

  '이제쯤이면 네가 뭘 시작할 타이밍인 것 같은데?'


  5년 만에 만난 놈이 반갑다는 인사는커녕 아주 고약하게 굴었다. 낯선 탓이라며 애써 고개를 외면할 때마다 이제가 그때라며 내 옆구리를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찔러댔다. 분명 괜찮았던 것이 '이제'는 몹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글을 한 달이나 안 썼네.'

  '부장님은 쉬는 시간에 책도 읽으시고.'

  '절친은 아침 운동하고 출근한다는데.'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아도 불행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남들은 여유를 즐기는데 왜 나는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지. 자꾸 잡생각이 나는 것 같아 평소에는 하지 않던 소모적인 만남에 열중했던 것도 그 탓이었다. 그럼에도 여유로운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불청객 같았다.


  이후로도 한동안 여유와 나의 줄다리기는 팽팽했다. 나는 여유의 발목을 잡고 낑낑댔다. '내가 너를 처음 봐서 어색한 거지, 1년쯤 꼭 잡고 있으면 네가 다시 내게 돌아서서 나를 꼭 안아줄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되뇌었다. 강렬한 주문 속에서 나는 손이 부르트고, 다리에 쥐가 나고, 지쳐 스러져갔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불행한 사람이었다. 여유를 줘도 즐기지 못하는 멍청이였다.




  그래도 남자 친구와 있으면 종종 내가 불행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나와 다르게 생각이 복잡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연민하지도 않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함께 있으면 나도 그런 사람인가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 그와의 기념일이었다. 


  우스꽝스럽게도 배달음식을 먹고 곯아떨어지고, 더운 날씨 탓에 흐물흐물거릴 뿐이었다. 그는 내게 서점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짜증이 좀 났지만 에어컨 바람이나 쐬자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반사적으로 앉을자리를 찾는 내게 또 한 가지의 제안을 했다.


  "상대가 좋아할 것 같은 책 찾아와서 10쪽 읽기. 어때?"


  그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솔직히 어이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기념일이니까. 나는 그에게 물리학 책을, 그는 나에게 외국 추리소설을 들이밀었다. 결과는 내 예상 그대로였다. 그는 5쪽 정도를 읽다 자는 시늉을 했고, 나는 번역된 외국소설은 별로라며 질책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저번에 함께하던 글쓰기 스터디를 다시 하지 않겠냐는 제안도 건넸다. 그래, 기념일이니까. 왠지 모르게 정유정 작가의 다른 소설을 좀 살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산 신간도 다 안 읽었으면서도 흥미가 샘솟는 기분이 썩 좋았다. 


  서점을 나와서 다이소를 향했다. 이번엔 내가 터무니없는 물건을 샀다. 다이소는 유용한 물건을 사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지만, 쓸모없는 물건을 사기에도 좋은 곳이다. 나는 콩알딱지만한 비즈팔찌만들기 세트를 샀다. 남자 친구도 같은 걸 하나 집었다. 집으로 돌아가 하자고 했지만 역시 하지 않았다.



  

  데이트가 끝나고 돌아와 씻고 밥을 먹고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러다 가방에 방치된 비즈팔찌만들기 세트가 생각났다. 한번 해볼까에서 해보자로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글쓰기나 책 읽기, 아침운동과는 다르게 시작하기에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나 쫌쫌따리 좋아하네... 너무 귀여워...


  어렵지 않게 만든 비즈 팔찌가 반짝이는 걸 보니 몹시 흡족한 걸 넘어 신이 났다. 갑자기 막 두근거리는 마음이 주체가 되질 않아서 <완전한 행복>을 신나게 읽었다. 정말 어느 순간 갑자기 나는 행복한 사람 같았다. 쉬는 날에도 뭔가를 계속해야 편안하면서도 말이다.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불행한 순간과 행복한 순간이 있을 뿐이다. 물론 아직은 불행한 순간이 조금 더 많은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수량적으로 내 인생을 평가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냥 나는 행복한 순간이라고 느낄 때 꼭꼭 아주 오래오래 음미하기로 했다. 오늘 글의 목적이기도 하다.




휴 정말 재밌다!


[오늘 나의 행복함]


* 나는 정유정 작가의 글을 읽을 때 행복하다. 깔끔한 문체로 써내려 간 숨 막히는 이야기는 내 가슴을 아주 널뛰게 한다. 그녀의 신간을 기다리는 것도 나의 행복함이라고 정의해두겠다.


* 손으로 무언가 만들 때 행복하다. 내 취미란을 스쳤던 뜨개질, 베이킹, 오늘의 비즈공예도! 서툰 솜씨라도 뭔가 새로운 걸 탄생시킨다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 나는 여유롭지 않을 때 행복하다. 바쁜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을지라도 글쓰기 스터디 일정을 잡고 주제를 들고 고민하고 쫓기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도 참 스릴 있다. 




  예전에 알랭 드 보통의 <소소한 즐거움>을 읽은 적이 있다. 소확행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가이드북이었다. 대단한 아저씨지만 내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았었다. 아마 공감은 갔으나 내 이야기는 아니었던 탓일 테다. 그래서 나는 나의 행복함을 찾겠다. 


  기나긴 이 글을 다 읽을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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