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나를 지탱하는 3월의 행복들이야

잊지 않게 꼭꼭

by 다보일

아침에 고데기를 하다 눈물이 왕왕 났다.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 출근하기 싫다고 엉엉 우는 어른이 나 말고 또 있을까. 한심스러워서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이런 날이 하루이틀 쌓이다 보면 나는 왠지 꾀병이나 엄살을 부리는 아이 같아진다. 그저 또 내 탓을 한다. 그러다 트위터 명언을 떠올린다. '하기 싫으면 어쩔 건데. 그만둘 거야?' 아니지. 눈물을 훔치며 고데기를 마저 했다.

KakaoTalk_20230331_215323902.jpg 이거다 뺨을 후리는 명언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여유로운 호수 같은 부장님과 늘 조급한 폭풍 같은 내가 함께 일한다는 건 그저 나 혼자 일한다는 거였다. 부장님이 나쁜 건 아닌데 미웠다. 몸이 아프지 않은 덕에 기피 업무를 맡았다. 예산을 짜고 외부 인력의 일정을 조율하면서 아이들에게 짜증도 화도 내지 말아야 하는 게 담임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고데기를 하다 울만큼. 그런데 마음만 아픈 탓에 아무도 몰랐다.


어느 날은 퇴근하고 화만 내는 내가 너무 싫었다.

'행복에 민감해지자며. 오늘 정말 행복한 일이 단 한순간도 없었어?'




서론이 길었다. 미칠 것 같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3월의 사소하고도 나를 지탱하던 순간들을 기록해 둬야겠다.


KakaoTalk_20230331_220059582.jpg 왜 당신은 이렇게 따스운가요

퇴근 전에 만난 동료 언니였다. 정말 씩씩하게 "와, 이제 알았다. 나 힘든 거 같아."하고 껄껄 웃었는데, 다 들켰다. 누군가 따습게 대하면 의심부터 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와라락 나버렸다. 티 안 내려고 애썼는데 부정적인 기운이 나도 모르게 줄줄 샜나 보다. 저 따뜻한 아이스크림 기프티콘이 아까워서 먹질 못한다.


KakaoTalk_20230331_214816789_02.jpg 바보

힘내자는 말을 싫어한다. 힘이 안 나는데 어떻게 힘을 내나 맘 속으로 툴툴대는 편이다. 그래도 응원하는 말이니까 늘 그러려니 했는데. 입버릇 같은 힘내자는 말을 10초 만에 철회하는 남자친구 덕에 아침부터 콧물 흘렸다. 그렇다. 우린 모두 힘내기 싫은 하루가 있는 법이다.


KakaoTalk_20230331_213134684.jpg 홍보 아님 난 맛도 못 봄

학교에서 먹기 싫어서 챙겨 왔던 떡을 엄마가 챙겨갔다. 그리고 다음날 빈 봉지가 내 책상에 올라와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어디서 파는지 알아보라고 놔뒀다는 엄마 말에 엄청 웃었다. 요즘 뭐든 맛있게 드시는 덕에 포동포동해졌는데도 또 먹을 걸 사주고 싶어졌다.


KakaoTalk_20230331_214816789.jpg 서귀포 벚꽃이 제일임... 진짜...

나는 해마다 계절별 꽃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어딘가에 달려 생명력을 뽐내는 꽃은 정말 예쁘고 귀엽고 낭만적이다. 올해는 벚꽃 구경 갈 시간도 없고 구경하려 하면 날이 흐리거나 재채기를 했다. 이러다 최초로 벚꽃 구경을 못하는 한 해가 되겠구나 했다. 막국수를 먹고 돌아오던 길에 '저기 벚꽃 많이 폈겠다'라는 내 말 한마디에 엄마가 당장 핸들을 돌렸다. 주욱 늘어선 벚꽃길을 지나는데 눈물이 났다. 행복해도 눈물이 난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KakaoTalk_20230331_213134684_02.jpg 오전엔 싱그럽고 오후엔 시들한 것은? 정답: 나, 떨어진 벚꽃


벚꽃 구경을 제대로 못했다는 내 엄살을 들은 학생이 등굣길에 주워왔다. 정말 또 울 것 같았지만 나는 지금 좀 씩씩한 선생님 컨셉이니까 꾹 참았다. 정말 아이들의 사랑에 나는 끔뻑 죽어버린다.


KakaoTalk_20230331_213134684_05.jpg 거의 뭐 약국 차릴 기세인데유

자취하는 동생이 손을 베었다. 아랫집까지 피를 철철 흘리며 갔다기에 거의 처음 누나 노릇을 해보려고 했다. 이것저것 상비약 좀 챙겨다 갖다 줘야지라는 내 말을 듣고 약국 차릴 기세로 약을 사 온 남자친구 덕에 행복했다. 이 날 쉬는 날이었는데도 짧게라도 보겠다고 온 이 시대의 스윗가이다.


KakaoTalk_20230331_213134684_04.jpg 제품은 이춘삼 짜장라면입니다. 위 사진은 조리 예시입니다.

엄마도 나도 열받는 하루가 있다. 그런 날은 좀 조심해야 한다. 사소한 일로도 스파크가 튀어 큰 화재로 번지기 때문이다. 스파크가 튈 무렵 내가 화난 말투로 제안했다. "집에 사은품으로 받은 짜장라면 먹을래?" 엄마는 쿵탕쿵탕 대패삼겹살도 넣고 양파도 넣고 짜장라면을 끓여줬다. 밥까지 비벼먹었다. 그러고 평온해진 서로의 표정을 보며 깔깔댔다. 이토록 간단한 화재진압이라니.


KakaoTalk_20230331_222658825.jpg 넓은 바지 넓은 마음

살이 쪄서 빠지질 않는다. 왜 안 빠지는지 아는데 모른 척하고 있다. 오늘 작아진 청바지를 입고 일했는데 상부와 하부가 분리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오늘 당장 청바지를 사야겠다고 달려가서 두 개를 샀다. 어떤 색을 살지 망설이지 않고 두 색을 모두 산 게 너무너무 흡족했다. 옷에 몸을 맞추지 말자.




하기 싫은 일을 요즘 매일 마주하고 있다. 나는 지지 않으려고 맞서고 밀쳐냈다. 그러면서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어쩌면 하기 싫은 일을 그냥 하는 게 내 몸과 마음에 더 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기 싫은 일을 그냥 하다 보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내 일이 될 텐데. 호구는 되기 싫은데 아프긴 더 싫다.


아직도 불안하고 긴장되는 상태는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회수하는 중이다. 죽지 않도록 지탱하는 순간들이 있어서 그렇다. 부디 4월도 내게 너무 잔혹하기만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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