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게 꼭꼭
아침에 고데기를 하다 눈물이 왕왕 났다.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 출근하기 싫다고 엉엉 우는 어른이 나 말고 또 있을까. 한심스러워서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이런 날이 하루이틀 쌓이다 보면 나는 왠지 꾀병이나 엄살을 부리는 아이 같아진다. 그저 또 내 탓을 한다. 그러다 트위터 명언을 떠올린다. '하기 싫으면 어쩔 건데. 그만둘 거야?' 아니지. 눈물을 훔치며 고데기를 마저 했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다. 여유로운 호수 같은 부장님과 늘 조급한 폭풍 같은 내가 함께 일한다는 건 그저 나 혼자 일한다는 거였다. 부장님이 나쁜 건 아닌데 미웠다. 몸이 아프지 않은 덕에 기피 업무를 맡았다. 예산을 짜고 외부 인력의 일정을 조율하면서 아이들에게 짜증도 화도 내지 말아야 하는 게 담임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고데기를 하다 울만큼. 그런데 마음만 아픈 탓에 아무도 몰랐다.
어느 날은 퇴근하고 화만 내는 내가 너무 싫었다.
'행복에 민감해지자며. 오늘 정말 행복한 일이 단 한순간도 없었어?'
서론이 길었다. 미칠 것 같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3월의 사소하고도 나를 지탱하던 순간들을 기록해 둬야겠다.
퇴근 전에 만난 동료 언니였다. 정말 씩씩하게 "와, 이제 알았다. 나 힘든 거 같아."하고 껄껄 웃었는데, 다 들켰다. 누군가 따습게 대하면 의심부터 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와라락 나버렸다. 티 안 내려고 애썼는데 부정적인 기운이 나도 모르게 줄줄 샜나 보다. 저 따뜻한 아이스크림 기프티콘이 아까워서 먹질 못한다.
힘내자는 말을 싫어한다. 힘이 안 나는데 어떻게 힘을 내나 맘 속으로 툴툴대는 편이다. 그래도 응원하는 말이니까 늘 그러려니 했는데. 입버릇 같은 힘내자는 말을 10초 만에 철회하는 남자친구 덕에 아침부터 콧물 흘렸다. 그렇다. 우린 모두 힘내기 싫은 하루가 있는 법이다.
학교에서 먹기 싫어서 챙겨 왔던 떡을 엄마가 챙겨갔다. 그리고 다음날 빈 봉지가 내 책상에 올라와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어디서 파는지 알아보라고 놔뒀다는 엄마 말에 엄청 웃었다. 요즘 뭐든 맛있게 드시는 덕에 포동포동해졌는데도 또 먹을 걸 사주고 싶어졌다.
나는 해마다 계절별 꽃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어딘가에 달려 생명력을 뽐내는 꽃은 정말 예쁘고 귀엽고 낭만적이다. 올해는 벚꽃 구경 갈 시간도 없고 구경하려 하면 날이 흐리거나 재채기를 했다. 이러다 최초로 벚꽃 구경을 못하는 한 해가 되겠구나 했다. 막국수를 먹고 돌아오던 길에 '저기 벚꽃 많이 폈겠다'라는 내 말 한마디에 엄마가 당장 핸들을 돌렸다. 주욱 늘어선 벚꽃길을 지나는데 눈물이 났다. 행복해도 눈물이 난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벚꽃 구경을 제대로 못했다는 내 엄살을 들은 학생이 등굣길에 주워왔다. 정말 또 울 것 같았지만 나는 지금 좀 씩씩한 선생님 컨셉이니까 꾹 참았다. 정말 아이들의 사랑에 나는 끔뻑 죽어버린다.
자취하는 동생이 손을 베었다. 아랫집까지 피를 철철 흘리며 갔다기에 거의 처음 누나 노릇을 해보려고 했다. 이것저것 상비약 좀 챙겨다 갖다 줘야지라는 내 말을 듣고 약국 차릴 기세로 약을 사 온 남자친구 덕에 행복했다. 이 날 쉬는 날이었는데도 짧게라도 보겠다고 온 이 시대의 스윗가이다.
엄마도 나도 열받는 하루가 있다. 그런 날은 좀 조심해야 한다. 사소한 일로도 스파크가 튀어 큰 화재로 번지기 때문이다. 스파크가 튈 무렵 내가 화난 말투로 제안했다. "집에 사은품으로 받은 짜장라면 먹을래?" 엄마는 쿵탕쿵탕 대패삼겹살도 넣고 양파도 넣고 짜장라면을 끓여줬다. 밥까지 비벼먹었다. 그러고 평온해진 서로의 표정을 보며 깔깔댔다. 이토록 간단한 화재진압이라니.
살이 쪄서 빠지질 않는다. 왜 안 빠지는지 아는데 모른 척하고 있다. 오늘 작아진 청바지를 입고 일했는데 상부와 하부가 분리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었다. 오늘 당장 청바지를 사야겠다고 달려가서 두 개를 샀다. 어떤 색을 살지 망설이지 않고 두 색을 모두 산 게 너무너무 흡족했다. 옷에 몸을 맞추지 말자.
하기 싫은 일을 요즘 매일 마주하고 있다. 나는 지지 않으려고 맞서고 밀쳐냈다. 그러면서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어쩌면 하기 싫은 일을 그냥 하는 게 내 몸과 마음에 더 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기 싫은 일을 그냥 하다 보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내 일이 될 텐데. 호구는 되기 싫은데 아프긴 더 싫다.
아직도 불안하고 긴장되는 상태는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회수하는 중이다. 죽지 않도록 지탱하는 순간들이 있어서 그렇다. 부디 4월도 내게 너무 잔혹하기만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