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친구에게 존경받는 방법

존경은 세종대왕한테나 하는 건 줄 알았는데

by 다보일
화면 캡처 2023-02-11 215544.png 나는 그녀의 행동을 받들어 공경한다

내가 그 친구를 존경하게 된 건 아주 단순한 계기 때문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었고, 그 애는 뛰지 않았다. 왜 안 뛰냐는 내 말에 돌아온 그 대답에 머리가 띵했다.


"괜찮아. 버스가 지나가고 나면 사람이 줄어서 다음엔 널널하게 탈 수 있어."


남들은 버스 시간이 중요하지 않았지만 나는 중요했다. 택시를 탈 수도 없고,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올 사람도 없었다. 가난에 의한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서 엄마아빠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미워한 나였다. 그런데 어째서 저 말에는 화도 나지 않고 부끄럽지도 않았다. 저 말에는 화를 낼만한 말도, 부끄럼을 느낄 만한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주 해맑게 웃으며 걷는 그 애가 무지 예뻤다. 처음으로 나는 버스를 놓칠까 걱정하지 않고 걸어서 학교를 나왔다.


그 애는 공부도 무척 잘했다.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타인에게 시샘이 났었지만 그 애만큼은 예외였다. 나보다 잘되었으면 했는데 같은 대학에서 만났다. 나는 여전히 가난해서였고 아마 그 애는 수능을 망친 탓이리라 생각했다. 안타까웠다. 늘 한 발짝 멀리서 지냈다. 나는 나대로 그 애는 그 애대로 대학생활을 즐겼으니 말이다. 그러다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동아리도 없고 친한 선배도 없는 나를 그 친구가 거두어 함께 스터디그룹을 꾸렸다.


나는 음악 과목을 못했다. 정확히는 음악만 못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잘하는 것들을 누가 훔쳐갈세라 더 움켜쥐었다. 스터디를 함께하는 친구들에게도 늘 엄살만 피웠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내 책상에는 바르게 손으로 쓰인 음악 과목 정리노트가 놓여있었다. 노트에 붙은 조그만 쪽지에는 "힘내!"가 적혀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씩 웃어 보이는 그 얼굴에 나는 책상에 엎드려 울고 말았다. 그때 나는 정말 나 자신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긴 시간이 흘러 교사가 되었다. 일이 지겨워질 때쯤 브런치에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쓰는 것 같던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런 글들이었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스스로가 너무 좋아서 주변에 소곤소곤 알렸다. 그 애는 다른 친구들과 같이 내 브런치를 구독했다. 그걸로도 충분했는데, 그 애는 내 글(성공은 실패의 어머니)을 읽고 전화가 왔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흐느끼는 목소리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네가 말하는 에그타르트가 나한테도 있는 거 같아. 위로가 되었어."


초라하기만 하던 내 글이 그 애를 울렸다는 사실이 좋았다. 자꾸만 배시시 올라가는 입꼬리로 위로를 하려니 조금 어렵기도 했다. 우리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며칠 전 그 애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느긋하고 멋지다. 이번에도 머리가 띵했던 건 그 애가 나보다 어린 남자친구를 '○○씨'라고 부른다는 거였다. 나는 주변 친구들이 내 남자친구의 이름을 불러도 괜찮았다.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내적 친밀감이 있어 그렇게 부르는 거라 생각했다. 아마 몇 해 전엔 그 애도 그랬다. 그런데 올해의 그 애는 어색하지만 '○○씨'라고 불렀다. 아, 친구들이 어린 내 남자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건 당연한 게 아니구나. 남자친구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정말 그 애는 어른이었다.


나 혼자만 머리가 띵한 채로 그 애와 올레길을 걸었다. 최근 1년 동안 걸은 것 중에서 가장 많이 걸은 날이기도, 그럼에도 다리가 전혀 아프지 않은 날이기도 했다. 내가 윤슬을 좋아하는 이유, 출근하기 싫은 기분, 앞으로의 포부 등을 떠들어도 즐겁게 들어주는 (즐겁게 들었단 건 내 착각일 수도 있다) 그 애가 나는 여전히 참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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