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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May 03. 2020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

흉년이 풍년이로세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특히 나는 실패를 싫어한다. 어렸을 적부터 무엇이든 잘하던 나는 완벽주의자로 자랐다. ‘잘한다, 잘한다’ 소리에 익숙해져서 남들 시선은 엄청 신경 쓰는 나는 내가 못하는 모습이거나 초라한 모습일 때 스스로가 죽을 만큼 싫었다. 그래서인지 점점 도전이 힘들고, 시작이 버거워졌다. 무엇이든 잘하던 나는 하나만이라도 잘하고 싶은 내가 되어버렸다. 코로나19로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월급쟁이들 사이에 끼어 신세 한탄을 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힘든 거니까. 이건 불변의 진리다. 제 2의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오가는데 그 시점에서 또 울컥하는 게 나다. 나는 날더러 엄마 말 듣고 후회하지 않을 결정해서 부럽다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 길이 틀렸다는 것을 자기 눈으로 볼 때까지 달려본 사람들에게 질투가 났다. 원하지 않는 대학에 진학했을 때 글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흘린 콧물만 족히 한 말은 될 거다.      


한 말은 거짓말이다


그러기엔 글 없이도 잘 살았다. 사실 글 없이 못 살만큼 한가하지 못했다. 가난한 형편에 고집 부려 자취까지 하니 또 미안해서는 알바를 두 탕씩 뛰고, 돈을 번다는 생각으로 장학금이란 장학금은 다 받아냈다. 사람 사귀는 법은 잘 몰라서 인심 쓰는 척하다 된통 당하고는, 2학년 때 호기심에 만난 꽤나 웃긴 남자와 거의 유일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알차게 사느라 바빴다. 뭐든지 잘하는 나는 취업도 잘했다. 지 자랑인가 묻는다면 내 자랑 맞지만 직장생활은 진짜 뭣 같았다. 학교가 아닌 사회에서 나는 그냥 조팝나무였다. 뭐든지 못하고 서툴고 멍청했다.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하고 쪼아댔다. 늘 잘하느라고 욕먹고 견디는 법은 잘 몰라서 멘탈이 도토리묵이었다. 매일 같이 울고 매일 같이 욕을 하며 후회했다. 누군가는 취업했다고 부러워했고, 누군가는 그렇게 싫으면 늦지 않았으니 뭐든 시작하라 했다. 그땐 늦지 않았다는 말이 너무 싫었다. 그건 실패해서 돌아올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거나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온 세상인 줄 알았던 엄마는 노쇠해가고, 착해서 탈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 중인 남동생을 보고 있자면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인데 취미는 사치


자기소개서에 그렇다할 취미를 쓸 수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SNS를 보면 친구들은 암벽등반, 드럼, 드로잉 같이 멋진 취미들을 공유하는데 나는 그렇다할 것이 없었다. 더 이상 글쓰기를 ‘취미’란에 쓸 수 없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코끝이 매웠다. 그렇게 늘 수박겉핥기식이던 100가지 취미가 막을 내리고, 드디어 홈베이킹에 정착하려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에그타르트. 100번의 다양한 베이킹 레시피 끝에 그만두려고 할 때쯤 에그타르트를 만들었다. 영상보다 질척한 반죽이 바삭하게 익고, 실수로 많이 넣은 설탕이 노릇한 겉면을 만들 줄이야. 너무 맛있었다. 다른 레시피를 만들다가도 실패가 반복돼 힘들면, 다시 나만의 귀여운 에그타르트를 만들었다. 언젠가 이런 우연의 성공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실패도 즐거워했다. 맛을 보기 전엔 실패해도 적당히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점이 꽤 맘에 들었고, 나는 어느 새 생에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던 도전을 즐기고 있었다. 실패를 성공의 일부라며 포장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책임이라고는 덜 익거나 새까맣게 탄 밀가루 덩어리를 오롯이 내 입이 떠안을 뿐이니 말이다.     


나의 귀여운 에그타르트


쓸쓸히 실패한 듯 성공한 에그타르트를 먹고 있자니 착실하게 무엇이든 못하며 살았던 2년이 머릿속을 스쳤다. 원래부터 바보 멍청이인 것 같은 기분이 나를 잡아먹기 전에 글을 쓰고 싶었다. 키보드에 손을 놓으니 마냥 낯설고 어색해서 무엇이든 잘하던 시절의 내 글이 보고 싶었다. 스스로를 애잔해하며 코흘리개 시절 글을 보니 참 서툴고 별로인데도 예쁘고 기특했다. 그제야 뭐라도 해야겠다고, 일기든 신세 한탄이든 하소연이든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기장에 쓰기엔 손이 아프고, SNS에 쓰기엔 새벽 감성 취급당할 것 같아 블로그에 글을 휘갈겼다. 아무도 봐주지 않았지만 속이 후련한 것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친 자의 마음 같았다. 노릇하게 익는 고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도 설레는 마음이 다시 올 수 있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제는 손반죽으로 식빵을 만들다가 팔을 하나 잃었다. 감히 조언하지만 식빵은 사먹는 것이 맛도 좋고 당신 안위에도 좋겠다. 과정이 힘든 만큼 결과도 나와야 하지만 웬 돌덩이가 오븐에서 나왔다. 정글 같은 홈베이킹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열 번 넘게 만든 다양한 버전의 쿠키도, 생김새와 같이 대충 만든 맛의 머핀도 다 실패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런 홈베이킹 정글 속에서 어제의 돌덩이가 그래도 식빵 맛은 난다며 멍청이 같이 웃는 내 자신이 너무 사랑스럽다. 실패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라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성공한 경험이 있어야 뭘 해보든지 말든지 확신이 선다. 무엇이든 잘하던 내가 있었기에, 나만의 귀여운 에그타르트가 태어났기에 실패해도 언젠간 다시 성공하겠지 생각한다. (도박 빼고, 로또 빼고) 단언컨대, 성공이 실패의 어머니다.           



엄마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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