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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Aug 01. 2023

해맑고 일도 잘하지만 공황장애가 있답니다

불규칙한 나의 공황과 심기가 불편한 그들의 오해 - 오늘의 공황

  병조퇴 목적지에 '○○정신의학과'를 올린 날이었다. 실수로 공개되었지만, 공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픈 건 자고로 티를 내야 아는 법이니 말이다.  교장선생님께서도 항상 건강이 우선이라며 걱정 어린 말씀을 건네시고, 다들 나를 비싼 와인잔처럼 조심조심 대했다. 꼭 그러진 않아도 괜찮았다. 아니, 사실은 불편했다. 늘 유쾌하고 친절한 부장 선생님께서 내게 건넨 한 마디가 이를 증명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거?"

  "잘 모르겠어요. 예전부터 증상이 있긴 했는데."

  "아, 자기 막 소심하고 그런 거? 하하하."

 

  '하하... 하... '


  바깥으로 나가야 할 웃음이 가슴에 머물렀다. 그러곤 차갑게 표정이 식어버렸다. 불쾌한 티를 낼까 하던 참에 다른 선생님께서 부장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나는 곧장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공황장애는 소심해서 그런 거 아닌데...'


  사실 공황 증상이 있을 때 빼곤 나 그대로다. 엄마 말로는 입 다물고 있으면 김태희인데 입만 열면 '감태'라고 하는 해맑고 좀 바보스런 면이 있다. 그러니 여전히 내 주변의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주책맞은 소리로 품앗이를 잘한다. 여전히 날씨가 좋으면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가끔은 운동장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래도 자기주장도 잘하고, 사람 많은 식당에서 주문도 잘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수업도 잘하는 멋진 사람이다.


  그런데 공황장애는 그런 나를 네모의 꿈 안에 넣어버리는 것 같다. 사람 많은 곳은 무조건 불편하다든지, 의사표현을 어려워한다든지. 하긴, 생각해 보면 엄마도 그랬다. 공황장애라는 걸 듣고 나서는 시장이나 영화관을 갈 때 내 눈치를 살폈다. 중요한 업무 때문에 하는 사소한 긴장에도 엄마는 호들갑을 떨었다. 나를 사랑하는 엄마니까 그러려니 할래도 싫었다. 


  아주 규칙적인 나와 다르게 나의 애증스러운 공황장애는 정말 불규칙하다. 내가 10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나도 어떤 날은 불안하고 어떤 날은 아주 개운했다. 어제는 일타강사처럼 수업을 잘했다가 오늘은 교실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찼다. 마트에서 시식코너를 섭렵했다가도 어떨 때는 속이 울렁거려 쓰러질 것 같은 날도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어떨 때 증상이 심하냐고 해도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었다. 나도 이런 내가 답답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증상이 나타날 때 진정제를 먹고 안정을 취하는 것뿐이었다.


  나의 친구 중 한 명은 이런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해준다. 자기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또라이 같다고 하질 않나, 자기보다 일을 미리미리 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칭찬 같지 않은 칭찬도 해준다. 그러면서도 긴장되는 것 같다 그러면 커피 먹어서 그렇다고 하고, 힘들다 그러면 집에 가라 그런다. 공감은 별로 못하는 것 같은데 위안은 된다. 나를 여전히 해맑고 일도 잘하지만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대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 저녁도 진정제 두 알을 먹는다. 이 순간을 빼면 공황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헷갈릴 만큼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 다음 날 꼭 반대가 되지만.) 나보다 더욱 심한 증상을 겪는 분들에게는 죄송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감기도 사람마다 두통, 인후통, 기침, 가래 등등 주요 증상이 다 다른 것처럼 나는 나만의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해맑고 일도 잘하지만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이다!


어때요?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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