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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Aug 24. 2023

나의 공황장애는 어디서 왔을까

어쩌면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지 - 오늘의 공황

  가끔 <더 글로리>의 연진 엄마의 말을 되뇌고는 한다. '해답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였던가. 그러면서 어떤 일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앞으로의 해결책을 찾는데 더 집중하라고 조언해주곤 했다. 그것이 나의 위로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의 공황장애에게도 말했다. 우리 앞으로 잘해보자고. 약도 잘 먹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생활하자. 실제로 꽤 도움이 됐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연진 엄마의 말이 그릇되었음을 알았다.


  사람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비롯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가 될 현재를 잘 살아야 한다. 즉 가장 먼저 풀어야 하는 문제는 과거다. 나의 과거는 지긋지긋하다. 가정폭력범의 가출과 지독한 가난이라든지, K-장녀로서 짊어진 책임감이라든지. 상담을 할 때면 눈물이 나곤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게 내 심장을 멋대로 고장내기에는 너무 작은 과거가 되어버렸다. 곰곰이 생각했다. 내 머리와 심장은 언제 제멋대로 고장나버리는지. 그 직전의 순간은 어땠는지.




  나는 스스로 상당히 독립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편이라는 걸 안다. 이제는 어디에서든 그만 보였으면 좋겠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구닥다리인 MBTI 유형과 내 삶을 대조하며 얻은 가장 큰 성과다. 독립적인 건 상당히 멋져 보이지만 외로운 건 또 상당히 서글프다. 자존심이 강한 건 지나치게 고집쟁이처럼 보이지만 신념이라 말하면 또 든든하다. 양날의 검 같은 나의 성격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게 하면서도 내 곳곳을 베어냈다. 다만 그걸 내가 몰랐을 뿐이다.


  이제부터 약간 푸념 느낌이 되겠다.


  올해 새 학교와 5학년과 기피 업무를 맡았다. 내게 극한의 스트레스를 줄 수밖에 없는 환경들이었다. 새 학교란 영어 시간에는 어디서 수업하는지, 일과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부터 하물며 보드마카 위치까지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는 걸 어려워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자꾸만 사소한 걸 물어보며 바보 멍청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견디기란 너무 어려웠다. 


  5학년은 14시 30분경 하교한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 업무를 봐야 한다. 야근을 하면 되지 않냐는 말에 나는 또 한숨이 나지만 뒤에 가서 더 푸념하겠다. 어쨌든 큰 학교에서 나눠 분담했던 일들을 혼자 준비했다. 야영 수련만 해도 전세버스 예약, 내부 기안, 사전 답사, 가정통신문, 안전 지도물 등등을 왜 나는 혼자서 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옆반 선생님께 하나만 도와달랬어도 괜찮았을 텐데. 기피 업무는 자세히 말할 수가 없으나 모든 게 위와 동일한 느낌이다.


  독립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나는 아무 티를 내지 못하다 결국 친한 선생님에게 공허한 눈빛으로 말했다. 


  "언니, 나 힘든가 봐!"




  집에 가면 단 하나뿐인 나의 가족이 나를 반긴다. 엄마다. (동생도 있는데 따로 산다.) 세상 모든 것을 내어주는 당신께 나도 내 세상을 모두 내어주려 했다. 영화 <엘리멘탈>을 보며 펑펑 운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 엄마께서는 나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걱정하시는 탓에 내 영역을 하나도 남김없이 침범했다. 나의 진로부터, 친구 및 이성 관계, 생활 패턴, 건강까지 모두 말이다. 달리 말하면 엄격하고 보수적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엄격한 부모는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자식의 반응은 튕겨져 나가거나 눌리는 척하며 치밀해지거나라는 걸 말이다. 동생은 전자를 선택했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조부모도, 그 흔한 이모, 고모도 없는 엄마가 불쌍했다. 그러니 내 모든 것에 관여해도 나는 눌리며 다른 숨구멍들을 만들었다. 몰래 친구나 남자친구를 만나고 돈도 되지 않는 글을 쓰며, 아파도 약봉투를 숨기며 치료했다. 


  독립적이고 자존심 강한 탓에 나는 튕겨져 나간 삶을 선택하지 못했다. 그러니 아직 나는 여전히 오롯이 엄마의 탓이라고는 못한다. 




  그 무렵에 나는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다. 그리고 해답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문워크 중이다. 이런 과거의 생채기들을 모조리 닦아주고 약도 발라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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