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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Oct 02. 2023

진정제 10알을 먹고도 살았으므로 가출!

곧 서른이지만 출가 못하고 가출함 - 오늘의 공황

  나의 공황장애는 다소 복합적이다. 검사 결과지에서 공황 다음으로 무지하게 높았던 우울 수치와 자살 충동이 그랬다. 다소 힘든 상황이라 그랬으리라 넘겨짚었다. 공황장애라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히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정제를 먹으며 증상이 나아지고, 주변인에게 밝히며 스스로에게 당당해져 갈 무렵 나의 아홉수는 다시금 날뛰었다.


  스스로 분석한 공황장애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와 엄마와 나를 동일시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과 강박. 특히 후자는 치료하려야 치료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과 나를 꽁꽁 묶어두셨다. 모든 공포로부터 나를 지켜내려 안간힘을 쓰시고도 모자라 내게 극단적인 협박의 말과 행동을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그럴 때마다 무척 아팠지만 나는 자꾸 엄마와 나를 합리화했다. 엄마의 삶은 그만큼 불행했고, 엄마의 인생에서 나의 지분은 점점 커졌을 것이다. 아빠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난하고 바랜 색을 내지 않기 위해 온몸을 갈아내는 엄마는 내 세상이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나는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지겹게 싸우고 괴로워하면서도 붙어있었다.




  그러다 내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결혼을 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여러 과정의 탐색전을 거쳤다. 예상하다시피 남자친구는 예선 탈락이었다. 다시금 '내' 인생의 선택을 앞두고 엄마는 길 안내판을 꾸역꾸역 돌려놓았다. 나는 늘 그랬듯이 거부했고 엄마는 늘 그랬듯이 밀어붙였다. 익숙한 결말은 엄마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길 바라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나는 엄마의 제안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머리가 이제야 좀 컸는지 생각이 달라졌다.


  엄마와 절연할 만큼 남자친구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 (미안해.)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내가 꽃밭을 잘 꾸려놓으면 벌이 날아든다. 나는 벌마저 내 꽃밭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인데, 엄마는 내가 벌에 쏘일까 꽃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항상 말이다. 정말 엄마는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걸까. 나는 엄마 말을 들었을 때 행복한가. 결론은 아니었다. 난 지금이 행복한데 엄마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저버리길 바랐다.


  그러고 맞이한 미래는 60점 정도였다. 해외여행은 물론이거니와 국내 여행도, 대학도, 진로도, 친구들과의 저녁약속도, 대인 관계도, 나는 엄마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며 그중 허락이 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남자친구 문제로 한 달을 넘게 싸우던 끝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우울감에 휩싸였다. 매일 방문을 닫고 누워 눈물을 흘렸다. 엄마에게 아무리 남자친구를 떠나 내가 내 삶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 아무리 말씀드려도 진전이 없었다. 나는 방안에 있던 진정제를 하나 둘 까서 손에 모아 삼켰다. 10알 남짓밖에 안 되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원래 죽으려면 아쉬운 법인가, 나는 남자친구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남자친구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남동생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쓰레기통 깊숙이 넣은 약봉투를 엄마는 보지 못했는지 "약 먹었냐"고만하셨다. 나는 그렇다 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뜨고 말았다. 어이가 없었다. 엄청나게 졸린 것 외에 이상이 없는 것에 실망했다.




  죽을 용기로 뭐든 하랬던가. 난 짐을 쌌다. 짐이 얼마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등바등 모았던 잡동사니들을 버리고 당장 사는데 필요한 것들만 챙겼다. 어플에서 가장 싼 방을 골랐고, 적금을 해약했다. 이 꼴을 본 엄마는 내 남은 짐을 모조리 현관문으로 던졌다. 아, 엄마는 이 순간에도 내가 남자에 미쳐서 집을 나간다고 생각하겠구나.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정말 슬펐다.


  며칠을 연락하지 않았다. 이기적이게도 나는 그 생활이 참 행복했다. 맛없는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 것, 내가 좋아하는 향의 섬유유연제를 사는 것, 내 방식대로 빨래하고 개키는 것, 자고 싶을 때 자고 친구와 통화하고 싶은 만큼 통화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삶이었다.


엄마의 수라상 같던 아침상은 아니지만 이대로도 무척 아름답다


  엄마는 2주가 지나 연락했다. 날 더러 독한 년이랬다. 죽을 각오를 한 뒤라 그런지 눈물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미안하다 했다. 남자친구와는 헤어졌으며 (지금은 몰래 다시 만나지만) 나는 지금의 내 삶이 만족스럽다 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엄마는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에 몹시 만족해했다. 다시 왕래를 하고 추석을 함께 보낼 정도로 말이다. 다시 들어오라는 말을 간혹 하시지만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다.


  정말 가출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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