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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Oct 28. 2023

두 번이나 내 방에 무단침입한 엄마

다 나 때문이야 - 오늘의 공황

  집을 나온 지 두 달 정도 되었다. 그리고 엄마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본가에서 자고 가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내가 싫다. 자취의 맛이란 자유에 있으니 말이다. 퇴근 후 청소와 빨래를 하고 저녁을 먹으면 사라지는 오후에도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런 내 맘을 엄마께서 아시면 몹시 서운해하실 테다.


  그러다 오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아, 엄마 말이 맞았나?  헤어진 그날, 나는 몹시 절망감에 빠져 또다시 자살 기도를 했다. 저번엔 열 알이었던 것이 이번엔 스무 알이 조금 넘었다. 브런치에 짧은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특정한 누구에게 살려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 같기도 하다.


  또 죽지 못했다. 비틀거리며 학교에 출근해서는 픽 쓰러지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이틀 만에 퇴원했다.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였으나 어떻게 보면 살라는 계시인가 싶었다. 간호학과를 졸업한 친구는 100알은 먹어야 죽을 수 있댔다. 결국 나 때문이다. 죽음 앞에 모질지 못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한 것이다.


  기댈 누군가가 필요했다. 피곤할 정도로 소개팅을 나갔다. 혼자 자취방에 있거나 본가에 엄마와 있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판단했다. 그중에 나를 몹시 사랑스러운 눈으로, 배려심 깊은 마음으로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물론 나는 이해되지 않는다. 열렬한 사랑에 덴 맘이 아직 따끔거리니 그저 미스코리아 웃음으로 화답할 뿐이었다.


  몇 번의 만남 뒤 그 사람은 내게 사귀자 했다. 나는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참 좋은 사람인 것 같다는 핑계 하에 기댈 구석을 마련한 것이다. 며칠 뒤 내 자취방에서 저녁을 대접했다. 그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다소 피곤하고 힘이 없는 목소리로 통화했다. 그저 그랬다. 그러고 십여 분 뒤에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엄마가 내 방에 무단침입했다. 그 사람은 얼떨떨했고, 나는 절망스러웠다. 도대체 왜.


  내가 또 약이나 먹은 줄 알았댔다. 남자와 한 공간에 있던 것은 나무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죽으려 하지 않겠다는 안심을 엄마에게 준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해 다시 내 자취방으로 불렀다. 부담스럽고 서글픈 내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전하기 위해 술도 몇 잔 기울였다. 사실 몇 병이다. 그리고 또 엄마는 전화를 걸었다. 혀 꼬부라진 내 목소리에 2차 무단침입이 일어났다. 아.


  다음 날 엄마는 리모컨을 던지며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헤프냐며. 저 사람과 결혼할 거냐며. 욕이 나오는데 참는다 그랬다. 나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 나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차에 치이고 싶었다. 난 겨우 입을 떼어 말했다.


  “날 가장 상처 주는 건 엄마야.”


  내 모든 선택이 불안한 사람. 나를 너무 사랑해서 어떤 위험으로도 갈 수 없게 하는 사람. 내 불행한 미래를 상상만 해도 화가 치미는 사람.


  그래서 나는 지금이 너무 불행하댔다. 지금이 너무 불안하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고. 엄마는 내게 집에 올라가 있으랬다. 자취방에 가면 더 불안할 것 같아 집으로 올라왔다. 식탁에 진열된 엄마의 약봉투는 또 나를 탓하게 만든다. 나 때문이다. 나 때문이다. 편의점 김밥과 육개장 컵라면을 먹고 잠들어버렸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정확히는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싫었다.


  엄마는 여기가 여관이냐며 잠만 자는 나를 탓했다. 문맥과 상황에 상관없이 나는 전 남자친구가 보고 싶었다. 어리석기도 하지. 내 이런 상황을 수년간 보듬어주고, 내 탓이

아니라 말해 주던 사람. 내 모든 선택이 옳게 보이게 해주던 사람. 나를 너무 사랑해서 위험을 겪어보라던 사람. 내 행복한 미래가 자신의 목표니 같이 이겨내 보자던 사람.


  새로이 만나는 사람에게 참 미안하지만, 나는 이 모든 걸 설명하기엔 너무 지쳐버렸다. 그래서 그저 괜찮다고, 늘 이래왔다고만 말한다. 이 또한 나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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