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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Oct 08. 2023

나를 함부로 연민하는 이들에게

그날의 감정 - 바스러짐

  나를 함부로 연민하는 이들에게


  안녕하시냐는 말을 건네지 못할 만큼 저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어찌 인사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오늘은 꽃을 보아서 무척 기분이 좋았어요. 꽃은 이상하게 사람 마음을 말캉하게 만들거든요. 내가 꽃인지 꽃이 나인지 하는 한가로운 생각을 하며 그 속을 거닐자면 잡념이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그런데 당신을 만났어요. 


  당신은 엄마의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 저는 잘 알지 못하시겠죠. 저를 아는 분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저를 몹시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전 사람을 오래 지켜보아야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러니 어떻게 단박에 어떤 사람을 좋다 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러며 당신 조카를 소개해주고 싶다셨어요. 55평 자가 소유자에 동생은 내과 의사고, 부모님 모두 교육자 출신이시라던가요. 그러고 제게 '땡잡았다'셨죠. 내가 땡을 잡았다니요. 


  저는 가난합니다.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이 가난합니다. 이런 저를 저는 몹시 연민합니다만 다른 사람이 함부로 저를 연민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요. 저는 아직은 꽤나 멀쩡히 생겼고, 밥 굶어 죽지 않고, 글 쓰는 재주도 좀 있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사진도 잘 찍고, 혼자 사색에 잠겨 생각을 정리할 줄도 알아요. 월세 살고, 동생은 백수고, 어머니는 중졸이지만요. 그게 저를 연민할 이유는 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바스러진 마음을 잘 모아 억지로 꾹꾹 눌어 담는 것뿐이었어요. 콜록콜록 기침을 해서 제 마음을 당신의 눈코입에 처넣고 싶었지만 당신은 그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이거든요.


  간혹 저를 함부로 연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가 불쌍하지만,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지는 않아도 됩니다. 내일 죽어도 상관없지만, 당신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전 남자친구의 집이 마땅찮아 싫다던 엄마는, 제가 땡 잡힐 뻔한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속으로는 쌤통이라는 불효년의 마음이 들었어요. 엄마는 씩씩 화를 내셨어요. 왜요. 어머니. 그럼 저는 왜 그 친구에게 그토록 많은 못을 박아야 했나요. 


  세상에 완벽히 좋은 사람은 찾을 수 없어요. 내게 맞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어머니. 야윈 제 얼굴이 안쓰럽다며 울지 마세요. 저를 불쌍히 여기는 건 저 하나로 족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부디 울지 마세요.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는 것도 꽤나 치유되는 일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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