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을 말하는 방법

양세찬 씨 사랑해요

by 다보일

긴 연휴가 끝나고 나는 몹시 피로했다. 아직 결혼하지도 않았고, 연휴가 끝난 뒤 출근하지도 않지만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명절은 내게 늘 그런 존재였다. 그러니까 오늘 나는 조금 게을러도 된다. 아무렇게나 뻗친 머리를 질끈 묶고 세수와 양치만 해낸 뒤에 TV 앞에 앉았다. 뺑 스위스와 검은콩두유를 챙기고 습관처럼 런닝맨을 틀었다. 오프닝에는 자신을 위한 선물과 편지를 써오는 벌칙을 수행했는데, 유재석은 호두까기 인형과 귀여운 기차 오르골을 꺼내며 자신은 명절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이에 양세찬은 '화목해서 그래. 화목한 집은 명절을 좋아해.'라고 답했고, 나는 아주 동의했다. 그래. 우리 가족도 화목하기만 했다면 나도 명절 마니아였겠지.




명절 내내 나는 체기를 달고 살았다. 사실 체기라고 외면했지만 공황 증세에 가까웠다. 가슴이 몹시 답답하면서 이명이 들리거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듣고, 차 사고를 상상하면서 안전벨트를 하지 않거나 고데기를 하면서 화재를 걱정하고 불을 끌 순서를 생각했다. 여전히 제멋대로인 동생이 싫으면서도 좋고, 엄마는 그런 동생을 챙기면서도 욕하고, 나는 그들을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셋 중 어느 누구도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것. 이건 우리 가족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우리 가족에게만큼은 모종의 평화 협정이었고, 이는 명절 내내 지켜져야 했다. 그건 사실 내게 피로를 넘어 공포에 가까웠다.


동생이 하루 일찍 자취방으로 돌아가면서 명절이 무사히 끝나나 싶었다. 엄마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근육통에 시달리고, 나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진 걸 제외하면 말이다. 다음 날 아침 동생은 싫어하고 나는 아무 생각 없고 엄마는 너무 좋아하는 메밀칼국수를 엄마와 둘이 먹으러 갔다. 분명 기분 좋게 출발했는데 엄마와 나는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엄마는 수시로 앞 차를 앞지르고, 나는 드라이브송을 틀지 않는 것. 그렇게 맞이한 국수가 맛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성급하게 먹다 입을 데고, 엄마는 그런 나를 미련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나는 급하게 먹는 엄마를 탓하고, 엄마는 기분을 상하게 한 나를 탓했다.


그래도 엄마는 내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뺑 스위스를 파는 카페에 가자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뺑 스위스 두 개를 포장하고 바닐라라테를 시켜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유로운 엄마와 달리 내 마음은 몹시 분주했다. 매일 포장만 하는데. 엄마는 바닐라라테를 두 모금만에 끝낼 텐데. 엄마랑 할 얘기도 없는데. 그래도 나는 사과는 잘하니까.


"명절 내내 좀 날 서 있었어. 미안."


엄마는 다 마신 잔에 물을 채웠다. 그건 카페에 더 있겠다는 거였고, 당신도 내게 미안하다는 거였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더 하고 싶다는 거였다. 대화의 줄기는 명절 내내 불편했던 심정부터 뻗어나가 사주팔자를 거쳐, 나의 결혼에 대해 논하게 되었다. 엄마는 내 탓을 했다. '성질 좀 죽여. 좀 의지하고 기대.'라고 말하는 엄마가 미워서 '그럼 내가 동호회든 운동이든 어딜 가도 상관 마.'라고 말했다. 그다음부턴 예고된 핑퐁이었다.


"신경 끄라는 말이냐? 어차피 너 요즘 어디 가도 나한테 통보뿐이잖아."

"그게 당연한 거야. 그럼 허락받아야 해? 내 나이에?"

"나는 변하고 있는데, 니가 그걸 몰라주잖아."


눈을 마주치면 입을 열 것 같았고, 입을 열면 눈물샘도 같이 개방할 것 같았다. 입 안에는 엄마를 탓하는 말들이 폭풍 쳤다. 입을 열지 않으니 말들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위장에 닿았던지, 속이 쓰리고 또 이상하게는 심장이 아픈 것 같아 침묵을 택했다.


근래 엄마가 내가 늦게 들어와도 전화하지 않고, 약속이 있으면 군말 않고 보내줬다. 하지만 늘 달갑지 않아 했고 나는 엄마의 변화보다 그런 불편함을 먼저 눈치챘다. 그러니 전화하지 않아도 일찍 들어가고, 약속이 있으면 양해를 구하는 편이었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서로의 불편한 속을 내비치지 않는 것. 애석하게도 그게 우리가 사랑을 말하는 방법이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원하는 대학을 엄마가 원하지 않았고, 엄마가 원하는 직장에서 나는 아팠다. 그 이후로 나는 글 쓰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엄마는 교사가 좋은 직업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엄마는 지독히 싫어했고, 나는 그런 엄마를 지독히 싫어했고, 그 사람은 그런 우리를 지독히 싫어했다. 그 이후로 엄마는 나의 남자친구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고, 나는 내 마음보다 엄마 눈치를 들여다보며 연애했다. 엄마와 나는 사랑을 말하지 않으며 서로를 사랑한다고 알아달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말하길 포기했다.


"몰라줘서 미안해. 근데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 나는 꽤 괜찮은 사람 같았는데, 남들 다 하는 걸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안 괜찮은 사람, 아니, 사실은 별로인 사람 같아서. 내가 너무 미워서 힘들었어. 그래서 엄마한테 짜증을 냈어. 그러니까 엄마, 내 탓하지 말고 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해줘."


엄마는 다시 빈 잔에 물을 채웠고, 열과 성을 다해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해 내려 애썼다.





양세찬은 지예은에게 정성 어린 편지와 갖고 싶다고 흘려 말한 목도리를 선물했다. 하하에게는 관심 있어하던 것 같은 속옷을 선물했다. 저렇게 웃기고 섬세한 남자가 다 있나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사랑을 말하던 방법은 침묵이어서, 저런 표현들을 보자면 눈물부터 나온다. 남들은 간지러워하는 지점에서 가슴 아파하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뺑 스위스를 다 먹어갈 때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점심은 먹었냐고 저녁은 뭘 먹고 싶냐 물었다. 엄마는 내가 파스타를 좋아하는 줄 알고 양식당에 예약을 해두라고 했다. 나는 습관처럼 동의하려다 방향을 틀었다.


"음, 내가 선택지를 줄 테니까 엄마가 골라볼래?"

"그래."

"짬뽕? 국밥?"

"국물 있는 거 먹고 싶어?"

"응. 날이 흐려서 그런가."


엄마와 나는 이제야, 아주 늦게, 사랑을 말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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