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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May 22. 2020

생리할 때 내가 겪는 모든 것

내 몸뚱이면서 왜 내 말을 안 듣니

생리 예정일이 10일 지났다. 밀당 중인 자궁에게 하소연해도 묵묵부답이다. 개자식. 예정됐던 14일의 전쟁에 10일이 고스란히 더해졌다. 24일. 거의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내 몸과 눈치 게임해야 한다. 생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왜 징징대냐고 묻는다면, 지금 난 징을 들고 당신에게 쫓아가겠다. (언.어.유.희)


※ 왜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냐고 묻는다면 뒤로 가기 ※


[D-7 ~ D-1] 수면 시간이 늘어난다.

나는 보통 7시간의 수면을 취한다. 그런데 생리 예정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퇴근하는 즉시 폭발하던 식욕을 수면욕이 압도한다. 겨우 몇 숟갈 들고는 저녁 7시나 8시쯤 지쳐 잠이 든다. 푹 자고 일어난 다음 날도 마찬가지로 거의 신생아 수준의 수면시간을 유지한다.


[D-6 ~ D-2] 가슴이 아프다.

어떤 기분을 표현하는 말이 아니고 당신이 생각하는 물리적인 가슴, 유방이 맞다. 이때가 되면 발효가 잘된 빵처럼 가슴이 부푼다. 호르몬이 선물한 볼륨감이 흐뭇하기엔 너무 아프다. 뛰어서 아픈 건 물론이고, 옷 갈아입을 때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 계속 아프다. 뭐 방법이 없다. 그냥 가만히 두는 수밖에.


[D-5 ~ D-1] 양극단의 기분을 맛본다.

하루에 몇 시간 단위로 기분이 달라진다. 아침 먹을 땐 즐거웠다가, 점심 먹을 땐 우울하고, 저녁 먹을 땐 화가 난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이 시기에 나는 내가 아니다. 그저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휘청휘청 이끌려 다닌다. 그냥 기쁘고, 그냥 슬프면 차라리 좋으련만 진짜 양극단의 기분 상태가 된다. 기쁠 땐 길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슬플 땐 밥그릇에 소복이 쌓인 밥알들을 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기대하지마

[D-5 ~ D-1] 양극단의 맛을 찾는다.

둔감한 내 입맛이 백종원이 되는 순간이다. 이건 아니쥬? 이렇게 하면 안돼쥬~ 하다가는 엄마한테 밥숟갈로 머리가 터지는 기적을 볼 수 있다. 오늘은 스트레스를 받은 척 불닭볶음면을 먹고, 내일은 우울한 척 초코 티라미슈를 먹을 거다. 단짠단짠을 발견한 사람은 진짜 상 줘야 된다.


[D-Day] X 되는 날이다.

허리가 찌릿했다. 아. 왔다 *발. 서둘러 생리대를 차고 기다리면 자궁이 파티를 한다. 파티한다고 나한테 허락도 안 받았잖아 나쁜 새끼야ㅜㅜ. 누가 내 허리뼈를 조각조각 떼서 면밀히 관찰하는 고통과 자궁을 쥐어짜는 고통이 시작된다. 엎드려도 누워도 낫질 않고, 이대로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진통제를 먹고 잠에 들어야 하지만, 직장에선 잘 수 없다.

내 자궁 상황

[D+1 ~ D+3] 다이어트 최적기는 바로 지금이다.

백종원에서 고든 램지로 변신이다. 밥알이 입에서 꺼끌거리며 헛돈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에선 안 나던 냄새가 나고, 최애 초콜릿에서 기름기가 느껴진다. 뭘 먹어도 평가질이다. 한 끼만 먹어도 하루 종일을 버틸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마저도 아침에 피를 보고 나면 입맛이 뚝 떨어진다. 살려줘.


[D+4 ~ D+5] 사과해! 사과해!

피가 어느 정도 적당히 멎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지금 일주일 동안 엄마한테 뭔 말을 한 거지에서 시작해 직장에서 그 따구로 행동하다니로 끝나는 자기반성을 한다. 사과한다. 엄마 내가 잠깐 미쳤었나 봐 미안해. 부장님 맛있는 거 드시고 힘내세요. ㅎㅎ...

일주일 간 나는 어떤 쓰레기였나요?

할 거라고 지들끼리 약속한 전쟁 얼른 시작해버렸으면 좋겠다. 어차피 내 일정이나 의지는 니들 안중에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혹시 당신 주변에 일주일 사이 갑자기 변한 사람이 있다면, 나와 같은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럴 땐 당신의 누나, 언니, 여동생, 여자 친구, 아내, 어머니를 그냥 무시해도 된다. 두면 나아지고 사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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