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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May 28. 2020

회의 때문에 안 아플 순 없어

라떼 세상에서 살아남기 (2)

나는 자타공인 개복치다. 거의 스트레스 알러지 수준으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내 몸은 뜨겁게 반응한다. 성장기도 끝났는데 정강이뼈가 밤새 욱씬거린다든지, 볼 옆에 왕뾰루지가 난다든지 아주 스트레스를 싫어하는 걸 온몸으로 드러낸다.


내 직장은 코로나19로 바빠진 곳이다. 없던 사업 하나가 내 발등에 톡하니 떨어졌다. *발. 내 업무인 건 맞지만, 정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원래 이런 집단이니까 그러려니 하려고 했지만, 내 마음 안의 불씨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움찔, 꿈틀하더니 화르륵 타올라서는 들끓기 시작했다.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니까(?) 내가 해야할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남에게 부탁해야 할 일을 정리해서 안내했다. '역시 멋진 나야.'하면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는데 순간 어질했다.

이번 역은 편두통, 편두통입니다

이번 스트레스는 바늘 모양으로 둔갑하기로 정했는지 사정없이 내 왼쪽 대뇌를 찌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다가 한 방, 의자에서 일어날 때 두 방, 고개 돌릴 때 세 방. 직장 안에서 그랬으면 됐지, 밤새 오른쪽 왼쪽으로 공격하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눈가가 우물처럼 깊어보였다. 부디 오늘은 조용해달라고 새로 산 예쁜 옷도 입고, 맛있는 타르트도 쑤셔넣어줬다. 소용없었다. 아주 잔뜩 성이 난 듯 텀이 더 짧아졌다. 열 번만 더 그러면 조퇴해야겠다 했더니 한 시간 내내 스물 다섯 방은 찔린 듯하다.


개인주의자지만 이기주의는 아니기로 했으니 나의 일을 충분히 마무리한 뒤에 상사를 찾아갔다. 상사에게 편두통 때문에 병원에 좀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어제 발바닥에 불나게 뛰어다닌 내 모습을 봤으니 충분히 이해하겠거니 했던 건 철저한 나의 자기 연민이었나보다. 전체 회의가 있는 거 모르냐며 웃으며 얘기하는 당신에게 내 바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회의가 있는 건 알지만, 너무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예쁜 내 옷과 입가의 타르트가 당신의 눈에는 멀쩡함의 증거가 되었으리라.

나아...진쯔아...아푸다고호.....

진통제를 먹으려는데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아픈 걸 참아야 하지? 진통제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 넣고는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계속 아프기로 했다. 회의에 가서 멀쩡한 사람이기 싫었다. 아주 아픈 티를 팍팍 낼거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멀쩡히 다녀와버리고 말았다. 내 찌푸린 미간은 아무도 못 봤는지, 어떤 이는 자기 조퇴해야 한다며 자기 몫까지 발표해달라더니 쌩 나갔다. 와우.


조만간 코라도 파서 모두들 앞에서 쌍코피를 흘리며 쓰러질 거다. 스트레스가 내 몸을 괴롭혀서는 직장 안에서 쓰러져버렸으면 하는 소망이 커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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