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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un 20. 2020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하지 않았다

저는 보자 보자 보자기가 아닙니다

"○○아~ 다음 주에 30분 일찍 나오고, 야근해야 해."


뻔하지만 나는 눈을 감았다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시간이 괜찮냐든지, 부탁한다든지가 아니었다. 반말은 그렇다 쳐도, 어쩔 수 없다는 핑계 아래 숨은 명령을 참을 수 없었다. 최근 한 달 동안 내 업무 파트가 아닌 분야의 일을 어정쩡하게 담당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 아래 일했으니 이제 더는 참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가식적인 미소가 아닌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색으로, '괜찮아요' 대신 '괜찮지 않아요'를 말했다.

이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그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할 수 없었다. 내 업무가 아닌 일로 다른 팀에게 부탁하고, 아쉬운 소리 들으며 버릇처럼 감사해했음을. 예고 없는 야근 명령에 습관처럼 야근 수당을 받으니 할만 하겠다며 위로할 뻔 했음을. 그 모든 것을 토하는 것처럼 쏟아냈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모든 것이 잘못된 것 같아 초조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사교의 여왕인 그녀가 직장 안에서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지 두려웠다. 이기적인 사람일까, 버릇없는 사람일까. 불안을 잠재우려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정말 일기장은 나의 소울메이트인걸까. 짠물 파도가 일렁이는 쫄보의 눈에 작년에 써둔 멋진 글귀가 들어왔다.


적이 생기는 게 인생이 잘못되어간다는 징조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몇 개의 신념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다.
- Alain de Botton

저 아저씨가 누군지, 저 말을 어디서 본 건지 당최 기억은 나질 않지만 지금 내 인생을 절망과 걱정의 구렁텅이에서 끌어내 줄 마중물 역할을 하기엔 충분했다. (※ tmi : 알랭 드 보통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철학자, 소설가, 수필가이다. 현재 영국 런던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 중이다. - 위키백과) 나는 그저 오늘 불합리한 요구에 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나의 신념을 그에게 전했을 뿐이다. (비록 떠듬거리고 눈도 못 마주쳤지만 ㅎㅎ;;)


저는 코스모스 같이 여리지만, 그렇다고 니가 꺾을 순 없지 ! *발 !


아 물~론,(변명을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싸가지 없이 말하진 않았다. 저 멋진 말의 주인공이 되려면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나의 신념을 전달해야 한다. 나의 적이 될지 말지는 그 사람이 결정하겠지만, 나의 인생은 나밖에 결정하지 못하니까. 부디 당신은 더듬거리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당신의 신념을 또렷하게 전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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