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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un 27. 2020

제 걱정은 제가 할게요

내 실패를 남이 정하지 않기를, 내 두려움은 내가 만들기를

나는 아직도 면허가 없다. 이유는 없다. 그냥 다른 걸 더 하고 싶었고, 면허는 덜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속에 나는 즐거웠고 문제없었다. 그런데 다들 나더러 여태까지 뭐했냐고 타박한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그 사람이 이상했다. 남이사 면허를 따든 말든, 직장 가까워 걸어 다니는데 뭔 오지랖인가 싶었다. 곧 그 말을 한 사람이 두 명, 세 명이 되었다. 그때부턴 내가 이상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면허를 딸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고, 하필 떠오른 내 모습이 눈곱도 안 뗀 채 뒹굴거리는 백수 시절이었다. 그동안 게으른 나를 합리화했던 것뿐이었나. 남 다 하는 건데 너무 늦었나. 마음에 조급증이 일더니 속이 울렁거렸다.




주변 친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다 차가 있었다. 친구들은 곧잘 나를 데리러 오고, 버스로는 쉽게 갈 수 없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기도 했다. 분명 즐거운 하루였는데 즐겁지 않았다. 사람 만나 방전되는 집순이 기질로는 설명 안 되는 허리 통증이 그랬다. 불편했다. 면허가 없고, 차가 없는 탓에 어딘가 죄를 지은 마음이 1톤이었다. 나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면허도 없는 주제에 차 타서 미안해 엉엉


약속을 잡기 두려웠다. 나는 버스를 타도 괜찮은데, 친구들은 아닐 것 같아서였다. 친구들이 애써서 면허를 따고 차를 모는 동안 나는 게을렀던 탓이다. 제주도에서 차가 있으면 좋은데, 나는 차가 없는 탓이다. 철저하게 내 탓을 하고 있는 나는 꼭 실패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 기분을 견디다 못해 면허 시험 어플을 다운 받았다.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은 내 맘과는 달리 직장인으로서의 일상은 너무 자비롭지 못했다.




또 변명을 하는 거냐 따진다면, 어제 링거를 맞은 내 몸으로 반박할 것이다. 최근 큰 프로젝트를 혼자 소화했다. 사실 소화 못하고 체했다. 그래서인지 복도를 걷는데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겨우 겨우 찾아온 주말이면 몸져눕기에 급했고, 모두 잠든 시간에 주륵주륵 흐르는 눈물을 훔치기 바빴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면허시험을 떠올리겠는가.


얼마 전 또 누군가 친히 내 걱정을 해줬다. 면허가 아직 없어서 어쩌느냐고, 수능 끝나고는 뭐했느냐고 그랬다. 몸이 아프면서 머리도 어떻게 됐는지 "그러게요" 한 마디가 나오질 않았다. 남들이 면허를 따는 그동안 베이킹도 시작했고, 프랑스어도 조금 건드렸다며 말을 시작했다. 아직은 버스 타고 다녀도 별 문제없다고 필요하면 따겠죠하고 자리를 떠버렸다. 


증빙자료 첨부합니다


말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면허도 없지만 문제도 없었다. 면허가 없다고 남에게 해가 된 적도 없었고, 즐겁지 않았던 적도 없었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는데, 하마터면 면허가 필요한 이들에 의해 실패한 사람으로 규정될 뻔했다. 그 덕에 늘 알아서 잘하는 내가 못한 줄 알고 겁먹을 뻔했다.


걸어 다니면 이런 것도 마음대로 멈춰서 볼 수 있다


내 걱정은 내가 할 때 제일 효과적이다. 60개월 할부로 차를 샀다. 내후년쯤엔 직장을 옮길지 모른다. 이제는 면허를 딸 명분이 충분하다. 시기가 조금 남들보다 늦을 뿐이다. 차가 있는데도 열 번 넘게 면허시험에 떨어진다면, 그때는 내가 실패라며 두려워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부디 나를 향한 공격적인 걱정은 거두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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