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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un 28. 2020

내가 보잘것없는 사람일까 봐

좁고 깊은 우물 안에 발발 떠는 개구리야

내 직장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출근 시간 한 시간 전에만 일어나면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돈도 주지 않는데 5분 더 일하는 게 싫어서 보지도 않는 TV를 켠다. 왁자지껄한 TV 속 세상과 달리 내 마음속은 소리 없는 아우성 중이다. 오늘은 어떤 비효율적인 하루를 보내게 될까, 오늘은 또 얼마나 하찮은 취급을 당하다 올까 두렵다. 그렇게 출근 시간 10분 전에 발에 잘 맞지 않는 운동화를 신고 직장으로 향한다.


상사는 잘못된 문서 대신 나를 물고 늘어졌다. 내가 화장실을 갈까, 차를 마실까 재고 있는 것처럼 쉴 새 없이 전화를 해댔다. 띄어쓰기 두 칸이나 한 칸이나 비슷한 것 같은데 왜 이리 쓸모없는 것에 나의 노동력을 바쳐야 하는지. 마침표 같은 죄송합니다를 열두 번쯤 반복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비로소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피할 수 없는 일을 즐기진 못해도 정면으로 죽빵을 날려주고 싶었는데, 뻗은 건 나였다.


눈가의 붉은 기가 가시길 기다리며 텅 빈 사무실 책상 위에 엎드렸다. 휴대폰도 내 고개 옆에 살포시 눕혀 사진첩을 뒤적였다.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도 보고, 기대고 싶은데 옆에 없는 이들의 사진도 보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그러다 결국 맨 마지막엔 내 1등급짜리 성적표 사진을 보게 된다. 귓가에는 이미 DJ DOC의 <나 이런 사람이야>가 흘러나오고 있다.


3년 전까지의 나의 인생은 기승전결이 완벽했다. 부모님의 이혼과 가난을 겪었지만 결국엔 뭐든 잘하는, 인생 최고의 꿈은 아니지만 최선의 꿈을 이뤄가는 덜 이상적인 그런 이야기. 타고난 불행을 이겨내고 눈물겨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지겨운 동화 같은 내용이었다. 특히 내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성장형 주인공이 결국 1등을 차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러다 **대 **과에도 못 가겠다는 멘토 흉내 내는 선생님의 말을 악당의 선전포고쯤으로 생각했다. 5시에 일어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시작했고, 아무도 듣지 못할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끝냈다. 정확히 2년 뒤 나는 1등급짜리 성적표로 그 악당의 코를 짓눌러놨다. 졸업 후에 동네에서 마주쳤을 때 쳇-하고 돌아설 수 있는 용기는 나의 잘남으로부터 나왔다.


엄마의 간곡함이라는 폭력에 등 떠밀려 열아홉 인생을 모두 버리고 들어간 대학에서도 그랬다. 나는 못 간 대학에서 내가 그리던 캠퍼스 생활을 누리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속이 아려 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똑같았다. 다시 아침 새와 밤 귀뚜라미를 친구 삼아 취업을 준비했고, 나는 친구들 중에서 1등으로 취직했다. 누리지 못했던 푸른 캠퍼스를 시간 낭비쯤으로 묻어둘 수 있었던 건 나의 잘남 덕이었다.


이 지겨운 내 자랑 동화는 여기서 끝날 줄 알았다. 지겹더라도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과 달리 현실은 도저히 '엔딩'을 몰랐다. 발단-전개-위기-위기-위기-절정-위기-위기... 랄까. 그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잘난 사람이 아니었다. 물을 가득 담은 와인잔에 담아둔 금붕어처럼 나는 기울이는 방향 따라 해일을 겪었다. 한 없이 작은 나의 존재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작은 존재: 저녁 하늘의 달이 유난히 작고 빛나지 않는 것처럼


집에 돌아와서는 부끄러운 열등감으로 남 탓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한 일임에도 그들이 융통성 없어 그렇다며 주변인들에게 동의를 강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겨우 이 정도'라는 새드엔딩이 될 게 분명했다. 이런 나의 속을 엄마는 아직도 탯줄이 이어져있는 듯 훤히 알고 있었다. 나의 동의 강요에 참다못해 던진 한 마디 돌이 나의 우물에 지나치게 큰 파동을 일으켰다.


"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남들이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못 견뎌하는 거잖아."


악당이 저들이 아니라 나로 바뀌는 그 순간에 어안이 벙벙했다. 화려했던 과거에 집착하며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수많은 유명인들을 보며 나는 얼마나 혀를 찼었지. 과거의 모습을 재현하며 리즈시절을 떠올리는 그들을 왜 불쌍하다 생각했었지. 그래. 나도 결국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무서웠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보잘것없는 사람일까봐. 그래서 버릇처럼 말했다. 내 장례식에서 펑펑 울어주는 가족 아닌 누군가가 있다면 성공한 삶일 거라고. 나는 그만큼 누군가에게, 누군가의 세상 속에서 중요한 사람이길 바랐다. 그게 직장이든, 친구관계든, 사랑이든 말이다. 그러려면 우물에서 나왔어야 했는데, 다시는 나오지 않을 물을 기다리며 자꾸 우물을 팠다. 그러고는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는다며 좁고 깊은 우물 안에서 발발 떨었다.


상사가 야근을 강요했던 날, 악당인 나는 당차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고는 다시 개구리가 되어 떨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우물이 더 깊어질 게 분명했다. 결국 나는 30분 빨리 출근하고 야근까지 소화했다.


잘 맞지 않는 운동화 덕에 생긴 굳은 살을 매만지다 새 신을 샀다. 조금 편해진 발로 10분 빨리 출근하기 시작했다. 비효율을 못 견뎌 엑셀 찬양론자가 되어보고, 내 빈자리가 하찮지 않게 내 일이 아닌 일도 마구 맡아본다. 무기력한 대신 부단히 움직이고, 잘하지는 않지만 불쌍하게 꼼지락거린다. 언젠가는 결말이 오겠지. 다시 성장형 주인공이 되어보기로 했다.


다시 성장해보겠습니다 응애 (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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