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보일 Jul 12. 2020

저는 그냥 피해자 코스프레할래요

원래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거예요

브런치에는 보기 싫은 사람 유형,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유형 등의 글이 많다. 종종 그런 글들이 내게 추천됐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그 속에 내가 있을 것 같아 열어보지 않았다. 불편한 외면이 계속되다가 정말 실수로 그 글에 들어갔다. 그대로 뒤로 가는 건 정말 겁쟁이 같기도 하고, 그 안에 진짜 내가 들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는 게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 중에서 후자에 손을 들었어야 했나 보다. 작가님이 서술한 사람 유형 중 절반이 나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늘 피해자인 척하는 사람'은 꼭 나를 지칭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어도 누군가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될 때의 충격은 늘 처음과 같다.


콜..록... 작가님 팩트로 그만 때려주세요...


나는 친구를 만나면 불행한 가정사를 툴툴댔고, 내 선에서 죽을 만큼 노력을 하는 것을 몰라준다며 엄마에게 울분을 토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 3일에 한 번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피해자가 되었다. 그러다 그런 글을 본 적 있다. 주변인을 감정 쓰레기통쯤으로 여기는 친구를 둔 사람의 사연이었고, 댓글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그 이후론 입을 꾹 다물었다. 친구에게 힘든 얘기를 하는 것이 미안해지고, 엄마에게는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카톡창에는 기나긴 하소연 대신 습관 같은 'ㅋㅋㅋㅋㅋㅋㅋ'가 도배됐고, 집안에는 한숨 대신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런데, 누우면 눈물이 났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눈물이 났다. 바로 누워도, 모로 누워도 알 수 없이 주룩주룩 흘렀다. 그러다 목구멍에서 끅끅거리는 소리가 가족들의 잠을 깨울세라 물을 가득 담은 세면대에 얼굴을 처박고 울었다. 그렇게 티 나지 않게 속으로 곪는 법을 배울 참이었다.


내 마음속 = 질풍노도의 엘사


어쩌다 곪은 속을 내비쳤을 때 엄마는 너만 힘드냐 그랬고, 상사는 너만 한 때는 다 그렇다고 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가해자는 없는데 나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 덕에 속에 있던 고름이 비질비질 새어 나왔고 나는 폭발했다.


"원래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거예요."


가벼운 생채기였던 것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살이 문드러지는 것보단 그때 그때 빨간약을 바르련다. 뻘겋게 칠해진 내 상처가 보기 싫은 사람도, 내가 피해 의식에 휩싸여있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내가 슬픈 이야기를 토로하는 동안에 당신은 나를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가해자로 여길 테고, 그 속에서 당신은 또다시 피해자가 되질 않는가.


범죄를 제외한 다툼에는 양쪽의 잘못이 있는 법이다. 그 속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는 늘 상대적이다. 그런데 나만 보고 피해자인 척하지 말라면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의 눈 신경 쓴다고 내가 무슨 홍길동도 아닌데 힘든 걸 힘들다, 힘들 때마다 말하지 않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다. 그런 상황을 내가 바꿀 수 있었다면 진작 바꿨을 텐데, 아쉽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신에게 공감과 연민을 호소하는 일뿐이다.


내가 슬플 땐 맑은 하늘도 이파리로 다 가려버리고 싶다구요!


이 세상에 이만큼 내게 연민을 건넬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맥없이 스러질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부축할 사람도 나뿐이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순간만큼은 당신과 같은 신발을 신고 신나게 욕을 해줄 테다.




    

작가의 이전글 실망스런 하루를 보내지 않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