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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ul 18. 2020

다음에 제주에 오시면은요 - 돌담을 보세요

저는 돌담 앞에서 사진을 찍어요

나는 제주를 많이 좋아한다. 제주에 살면서도 늘 제주에 있고 싶어 할 정도로 제주를 사랑한다. 귤을 사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 언제든지 원할 때 바다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종종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곤 한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제주는 조금 남다르다. 휴양의 도시에서 생존을 목표로 사는 나의 치열함을 식혀주는, 나만 아는 작은 섬만의 위로법이 그렇다.




어릴 적 돌담을 처음 봤을 때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손으로 쿡쿡 밀어보는 것이었다. 울퉁불퉁 엉기성기 모인 모양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생겨서 그랬다. 손가락으로 안되자 다음 날엔 손바닥으로 쳐보고, 두 손으로 돌담 가운데를 밀어 보기도 했다. 그다음에는 집주인 할머니가 뭐라고 할 것 같아 그만두긴 했지만, 세월이 지나고 출근을 하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돌담을 구경한다.


7일 중에 6일째 별로였던 그 날 유난히 날이 맑았다. 셀카나 찍을 겸 구도를 찾는데 퇴근길에 셀카봉이나 삼각대가 있을 리 만무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눈에 들어온 것이 돌담이었다. 움푹 들어간 구석에 폰을 세우고, 즐거운 사람인 척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을 회수하려는데 돌담이 인상을 찌푸리고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구멍도 뻥뻥 뚫리고, 울퉁불퉁 모난 모습이 꼭 직장에서 잔소리 듣고 구겨진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영 그랬다. 그런 너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사람들이 네게 관심을 주지 않는 거라며 괜한 핀잔을 주었다.


나랑 닮은 구석을 봐서인지 미운 소리를 하고 나서인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남의 집 돌담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세찬 비바람이 불었다. 제발 내일 출근하기 전에는 그쳤으면 하는 기도에 문득 돌담이 끼어들어왔다. 그래. 이왕이면 너도 안 무너지면 좋겠다. 신이 들어준 몇 안 되는 기도였다. 새가 지저귀고, 햇빛이 비치는 나뭇잎 사이로 덜 마른 빗방울이 떨어지는 아래 돌담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너도 참 어지간하다 하면서도 괜스레 내 속이 뿌듯했다.


문득 내 삶도 돌담 같았으면 하는 바람이 솟았다. 하루하루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구멍 숭숭에 울퉁불퉁 모났지만, 그런 순간들을 모아 든든한 돌담이 되자. 무너질까 초조해하며 시멘트로 틈새를 메우지 말고, 그냥 엉기성기 바람도 드나들게 두어서 무너지지 말자. 그래서 결국에는 어지간한 큰 바람에는 넘어지지 않고, 세찬 비에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자. 다짐 같은 바람을 작은 꽃송이에 담아 돌담 위에 얹었다.





"나 저 앞에서 사진 좀 찍어줘"

"그냥 집 앞인데?"

"아니 저 돌담 앞에서!"


결과물


등굣길에도, 출근길에도 수없이 봐왔을 돌담 앞에서 사진을 찍는 나를 친구들과 가족들은 이상하게 생각하리라. 그렇지만 돌담을 보면 사랑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다음에 제주에 오시면은 꼭 돌담을 한 번쯤 눈여겨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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