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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복 Jan 20. 2020

부치지 못한 편지

엄마가 사랑하는 봄이 오고 있어. 

봄이 오면 얇은 니트에 카디건을 걸치고 파스텔 스카프를 두르곤 했잖아. 

벚꽃 같기도 하고 목련 같기도 해서 아름다웠지. 

나는 그 모습이 꽃처럼 소담하여 여기저기에 자랑을 하고 싶었어.      

엄마가 골라주는 옷을 입고 엄마가 권하는 가방을 들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도 좋아했지. 

엄마는 내가 엄마랑 취향이 비슷해서 다행이라고 쇼핑을 할 때마다 흡족해 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우. 

미처 몰랐겠지만, 나는 빈티지한 것들을 더 좋아해.

원피스 보다는 바지가 좋고, 하늘하늘한 실크 스카프 보다 둘둘 맨 면 스카프가 편해.

그럼에도 아직도 나는 매대에 널 부러져 있는 파스텔 색깔의 실크 스카프를 보면 눈을 못 떼고, 여전히 잘 입지도 않는 원피스를 사서 옷장에 걸어 둔 다우.


엄마가 떠난 가을엔 바닥을 구르는 낙엽이 미웠는데, 

엄마가 사랑하는 봄이 오니 자꾸 잠을 설치며 긴 밤을 보내게 되네.

밤이 너무 까맣고 긴 날은 꼬깃꼬깃하게 서랍 속에 재워둔 엄마의 도시락 편지를 꺼내 봐. 

아직도 그 편지들이 노란 단풍처럼 바래지지 않고 그곳에 있는 걸 확인하면 마음이 놓이거든.


어릴 때 엄마는 나한테 편지를 써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어. 

학교에서 급식을 시작했던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엄마가 싸준 도시락 안에는 언제나 작은 쪽지 편지가 들어 있었지. 

친구들은 햄과 소시지로 가득한 도시락 보다 노란 엄마의 편지를 더 부러워했는데, 나는 그런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 하면서 항상 도시락 뚜껑을 천천히 열었어. 

솔직히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내용은 별 것 없었잖아. 

대부분 아침에 신경질 내고 나온 나를 타이르거나, 공부 열심히 하라는 당부, 반찬 투정이라든지 옷 타박 같은 것은 바른 학생의 자세가 아니라는 윤리 교과서 같은 엄마의 잔소리였지. 

그런데도 나는 늘 말미에 “오늘도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라는 문구를 읽고 나면 해사하게 피어나는 기분 이었어.      


엄마는 꼭 바라지 않았지만, 나는 가끔 채무를 갚는 것처럼 답장을 했지. 

식탁 위에 몰래 편지를 놓아두고 나온 날은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신기하게 엄마가 문을 열고 나와서 나를 꼬옥 안아줬어. 

그 품은 어찌나 뜨겁던지.       


지금도 내 서랍 속에는 여전히 빳빳한 엽서와 카드와 편지지들이 가득 모아져 있어. 

물론 이제는 갈 곳을 잃어 동면하고 있지만.

가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편지지를 한참 들여다보곤 하는데, 어쩐지 나를 닮은 것 같아 가여워.       


우리가 같이 주말 산책을 하고, 성당을 다녀오고, 장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쇼핑을 하던 곳을 나는 며칠 전에 떠났어. 

그 동네에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진지 오래 되었지만, 떠나기가 쉽지 않았어. 

마치 엄마를 두고 오는 것 같았거든, 

하지만 이젠 알아. 공간은 오래 전에 무의미해졌다는 것을. 

엄마와의 시간을 내 가슴에 묻었으니까.  


이사를 하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 

비교적 무탈하게 이사를 했지만, 나는 종종 버거워서 혼자 차안에서 울음을 터트렸어. 

혼자서 대소사를 처리했던 엄마도 고작 내 나이 또래였을 텐데. 

엄마는 그 날들을 어떤 마음으로 견뎠을까.


이제 나는 엄마를 따라 하기 바쁘던 소녀를 벗고, 나로 살아가기 시작 했어. 

내가 좋아하는 옷들을 사 입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공간을 꾸미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가. 

이제야 숨이 쉬어지는 기분인데, 우습게도 그 속에서 후라이팬 바닥에 녹아든 버터처럼 엄마의 흔적을 보곤 해. 

그럴 때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하하. 

내 기반에 엄마의 것들이 코팅되어 깔려 있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


그래, 맞아. 

엄마를 많이 좋아했어.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표현했을까.      

엄마의 마지막 날 내가 고백했듯, 

엄마의 딸이어서 좋았어. 

그리고 살아가면서 내가 엄마 딸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종종 해. 

덕분에 나는 잘 큰 것 같아.      

앞으로 내 안의 엄마를 기억하면서, 

엄마가 살고 싶었던 생들의 끝을 아련히 느끼면서,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건강하고 멋스럽게 나이 들어갈게.      


엄마, 고마워.

엄마, 미안해.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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