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갈망한다
어릴 때는 댄스그룹 핑클에 열광하는 동년배 남자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눈에는 간이 하나도 베어 있지 않은 맹물에 가까운 여자 몇 명이 나와 잘 들리지도 않는 가녀린 목소리로 연약한 척 하며 몸을 흐느적 거리는 모양새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그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 각각의 가수에게도 관심이 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세월이 지나 우리들의 핑클도 성숙해 가면서, 각자의 길을 찾아 걷는 것이 보였다. 일부는 연기를 했고, 일부는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길을 택한 이들 중 단연코 눈에 띄었던 이는 가수 효리 였는데, 그녀의 대중성과 영향력이 내 관심을 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리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저 효리가 사회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가끔 연기도 하고, 별걸 다 하는구나. 무엇을 해도 다 이슈를 만들어내는 것이 신기한 사람이다. 정도의 느낌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세월이 흘러 그녀가 민박집 안 주인으로 나온 어느 예능 프로에서 가수 효리가 아니라, 인간 이효리의 모습을 옅보게 되면서 좋아지기 시작했다. 화면 속의 그녀는 어딘지 편안해 보였고,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던 시절보다 훨씬 미소가 아름다웠다. 물론, 눈가의 주름이 늘었고, 전성기 대비 조금 더 왜소해진 것처럼 보이거나 어딘지 세월을 빗겨가지 못한 흔적을 발견했지만, 그런 것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나이를 먹고 늙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그녀가 멋있어 보였다.
따뜻한 보이차로 아침을 시작하고, 요가 수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수행을 하고, 반려동물들과 다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지켜보다가 어느 날 그녀가 하는 말들이 귀에 머물기 시작했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몇 가지의 말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느 예능프로에서 꼬마에게 “뭘 훌륭한 사람이 되니. 그냥 아무나 돼. 그래도 돼.” 라고 툭 건네는 그녀의 진심어린 조언 이었다.
우리는 사회가 만든 프레임 속에 몸을 구겨넣고 살아가느라 애를 쓴다. 사이즈가 맞지 않아도 까치발을 들거나 어깨를 접어서라도 규격에 내 몸을 맞추는 동안, 중력을 거스르는 고통스런 중압감을 덤으로 얻게 된다. 이효리가 던진 한마디는 굳이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 이후로 종종 그녀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고, 그녀의 근황을 궁금해 한다. 그리고 가끔 그녀와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아직 내 삶은 기라성 같은 선수들 사이에서 오늘도 나다움을 고민해야 하는 경주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이지 않은 흐름을 고대한다. 그녀처럼 사랑을 하고, 편안하게 정을 나누고, 어색하지 않게 생겨먹은 ‘나’ 있는 그대로 살고 싶다. 자연스러움이 주는 자유. 나는 자유를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