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참 재밌게 보는 드라마가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 그것이다. 가족주의를 표방하는 분위기의 드라마인데,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주인공들의 유대감과 정서적 소속감이 돋보인다. 드라마는 대학 동기 다섯 명의 일과 사랑,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주말에 몰아 본 지난 몇 화에서는 비를 좋아하는 송화와 그녀의 남사친 익준이의 모습이 나왔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이면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익준이는 송화를 찾아온다. 따뜻한 수제비 한 그릇을 제안하는가 하면, 우산도 없는 그녀의 귀가 길을 동행하기도 한다. 어느 날 응급실에서 돌아온 익준과 송화가 이른 아침을 먹는 장면에서 익준이 비가 오고 있다고 송화에게 알려준다. 송화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창문을 열고 세찬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 송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머금은 익준이 조용하게 상을 치우며 커피를 준비한다.
처음엔 익준이도 송화와 같이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익준의 옅은 미소를 보고서야 비 오는 날의 송화에게 다정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익준은 창밖으로 비를 바라보는 송화가 좋아서 비 오는 날이 좋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람 덕분에 무언가가 좋아진다는 것은 깊이 차오르는 기쁨과 같다.
출근길에 빗길을 운전하면서 비 오는 날의 송화를 바라보는 익준의 눈빛이 생각났다. 습한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고, 옷가지가 젖는 것이 번거롭기 때문에 비 오는 날을 싫어했다. 오래전 이름도 잊은 누군가에게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너 때문에 이젠 나도 비 오는 날이 싫어졌다”라고 문자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날엔 그 문장이 속한 마음이 와 닿지 않았다. 어쩌면 익준에게 송화가 그런 것처럼, 내가 싫어하는 무엇을 함께 싫어해줄 사람보다 내게 새로운 기쁨을 알게 해주는 사람이 더 절실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호대기 중에 눈 앞에서 부서지는 빗줄기를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비 오는 날이 싫지만은 않았다. 귓가에 음악이 흐르고 안온한 차 안에서 손가락을 튕기며 박자를 맞춰본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긴장감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