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를 든 할머니
그림:묵주를 든 할머니
(22.1*15.8 영수증 용지를 프린트 한 캔버스 위에 아크릴물감.)
할머니하면 떠오르는 것들. 묵주, 틀니, 인중에 사마귀, 담배. 그리고 코끝에 맴도는 할머니 냄새.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 담배를 태우셨다. 할머니는 떠나시던 98세 까지도 무척이나 고우셨는데, 엄마는 할머니가 담배를 태우실 때 모습이 프랑스 여배우 같다고 했다. 그 말 때문인지, 나도 할머니가 프랑스 여인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셔. 가서 뵙는 게 좋겠어.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곧 알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동안 할머니 얼굴을 그려 본 적이 없다는 게 떠올랐다. 할머니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급해졌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병실에 누워있는 할머니 얼굴을 찍었다. 나도 할머니 옆에 누워 함께 찍었다. 사진을 보여 드렸더니 고맙구나,누가 이렇게 내 사진을 찍어주겠니..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게 할머니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며칠 후, 할머니를 그린 그림을 가지고 병실을 찾았을 땐 할머니는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눈을 감고 계셨다. 말도 할 수 없고 손가락만 아주 조금 움직이실 수 있었는데, 그 움직임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림을 보여드리고 그림을 손에 갖다 대자 손가락을 움직여 그림을 잠시 잡았다가 놓으셨다. 아마도 내게 당신이 그림을 봤다는 걸 알려주고 싶으셔서 남아있는 힘을 다해 그림을 잡으셨으리라.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져 눈물이 난다. 모든 창작하는 이가 그렇듯 외로운 길을 걷는 막내손녀에게 마지막 힘을 보태 주신 것만 같아 나는 그 사랑으로 묵묵히 내 길을 걸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를 아주 보내드리기 전날, 장례식장에 친구가 왔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전에 장례지도사 일을 하던 친구는 상조회사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할머니 얼굴을 곱게 화장해드렸다. 꽃으로 둘러싸인 할머니는 곱고 평안해 보였다. 나의 할머니는 이곳에서의 고단한 여행을 마치시고, 나비처럼 가벼운 몸이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