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도 성스러운 섹스여
언젠가 한 번은 꼭 다뤄보리라 마음먹었던 글감이 있었으니, 바로 섹스다. 유교사상이 뿌리내린 동방 예의지국에서 떠벌거리기에 꺼려지는 단어이긴 하다만.. 우연찮게 구독자도 성인밖에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본래 쉬쉬하는 것들이 더 재미진 법이다.
우리 삶에 섹스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이보다 더 바보 같은 의문이 또 있을까. 섹스가 우리 삶에 뿌리내리기는커녕 우리가 섹스에 뿌리를 내렸다. 아무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단군 신화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아니고서야 모든 인간은 섹스가 없으면 빛조차 보지 못했을 미물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 섹스를 행하는 주체 역시 인간이라는 것이다. 정말 재밌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대머리, 전두환이 그렇게나 3S를 외쳐댄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스포츠, 스크린 그리고 섹스. 이보다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게 또 있을까. 자신이 보유한 빈약한 정당성과 수많은 분노의 시선을 덮어버리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게지.
인류는 언제부터 어떻게 섹스를 하게 되었을까. 갓 태어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한 공간에 두고 섹스에 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면 이들은 언제 어떻게 섹스를 하게 될까. 물론 섹스 이외의 모든 것들에 대한 정보가 정상적으로 제공된다는 전제 조건 하에서 말이다. 뭐 인격 모독이나 존엄성 관련 문제가 생길 게 뻔하니 평생 실험은 못해보겠다만, 나는 그 결과가 너무나도 궁금하다. 섹스에 관련한 음란물, 영상, 책, 기초교육 등의 외부 자극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섹스라는 행위를 시작하게 될까. 이 상황에서 만일 섹스가 가능하다면 섹스는 인간의 본능이자 욕구일 테고, 섹스가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육체적 쾌락을 앞세운 야동, 야설, 사진 등으로 우리의 삶을 휘저으려는 누군가에게.
미국 최초의 여성 랩 그룹으로도 유명한 Salt-N-Pepa (솔트 앤 페파)가 1991년에 발매한 ‘Let’s talk about sex’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이 곡을 퍽 좋아하는데, 주문 외우듯 섹스를 반복하는 데서 묘한 쾌감과 매력이 있다. 특히 가사도 마음에 드는데, 그중에서도 이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Let’s talk about sex for now
To the people at home or in the crowd
It keeps coming up anyhow
Don’t be coy, avoid, or make void the topic
Cause that ain’t gonna stop
어디서나 비밀리에 (혹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자. 이를 더럽히거나 피하거나 변형하지 말자. 어차피 섹스는 영원할 테니까. 누군가는 가지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섹스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지지 못한 것을 잊기 위해 섹스를 하니까. 어쩌면 가진 게 섹스밖에 없을지도 모르니까. 사랑은 없고 섹스만 존재할 수도 혹은 사랑만 있고 섹스는 부재할 수도 있으니까. 섹스로 인해 사랑하고 사랑으로 인해 섹스하고 섹스로 인해 섹스할 수도 있으니까. 섹스는 우리 삶에서 도저히 떼어놓을 수가 없으니까.
언제부터 섹스가 우리 삶에서 은근한 금지어로 지정되었는가? 오늘 같은 날에는 시발이나 섹스 같은 말들을 입에 담아주고 싶다. 흔히 일컫는 아주 저렴하고 상스러운 말들을. 우리가 알고 있던 상스러운 것들이 사실 성스러운 것일지 누가 알겠어? 섹스가 서운해하지 않도록 이 세상에 섹스 찬양 종을 울리리라. 그 이름도 성스러운 섹스여.
* 본 글은 <다붓한 공간>에서 진행 중인 2월 연재 원고 중 한 편을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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