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창호 Dec 18. 2023

지하도시 강남

프로로그

인천 북성포구. 여름 밤이 한가하다. 10년 전만 해도 밀물이 들어온 포구의 횟집엔 술꾼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넘쳐났건만, 중구에서 주차장으로 만든다며 포구안쪽을 매립하자 사람들의 발길이 말라 버렸다. 횟집 창가에서 보는 밤바다의 낭만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저 멀리 월미도 대성목재에서 하얀 연기만이 용오름처럼 하늘 높이 솟구쳐 올라가고 있다. 

 오늘의 타켓은 사채업자 조사장이다. 조사장을 이곳에서 기다린지 1시간이다. 킬러에겐 때를 기다리는 일이 전부이다. 살해의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조사장은 차이나타운에서 조직원들과 회식을 한 후 애인을 불러 이곳 횟집에 들어왔다. 두 시간 뒤쯤 월미도의 모텔로 이동할 때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나갈 것이다. 그 때 그 놈을 해치워야 한다. 한방에 보내는게 킬러의 일이다.

킬러에게 실수는 없다. 실수는 곧 죽음이다. 한순간에 생과 사가 달려 있다. 이 찰나의 순간을 앞둘때마다 내 머리에선 희열이 뿜어져 나온다. 

 어려서 사마천이 쓴 사기의 유협을 읽은 적이 있다. 유협은 자객이다. 자객 중에는 의로운 자객도 있다. 진시황을 암살하려 한 형가처럼 말이다. 사기에는 온갖 종류의 인물이 있다. 내가 주로 읽은 것은 열전이었다. 그곳에는 영웅과 간신, 책사와 잡놈 등 인간 세상에 있을 만한 온갖 인물들이 등장하여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자란 집엔 뒷간이 있었다. 나는 냄새나는 그곳에서 볼일을 볼 때마다  사기 열전을 읽고 또 읽었다. 뒷간에는 아버지가 읽던 낡아빠진 누런 그 책이 있었다. 그건 우리 집의 유일한 책이었다. 

  조사장이 일어났다. 기분이 좋은지 애인과 팔장을 끼고 희희낙락하며 걷고 있다. 가까이 다가간다. 술냄새가 뒤로 풍긴다. 나는 그놈 오른쪽으로 빨리 걷는다. 좁은 길목이라 스쳐 지나간다. 순식간에 그놈 정수리에 침을 박았다.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나는 천천히 희미한 가로등을 뒤로 하고 골목길을 빠져 나온다. 내 머리에선 쾌감의 전기불이 번쩍 번쩍 한다.      


작가의 이전글 김교신과 한림, 그 의기(意氣)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