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와 나, 5일차

팬데믹 시기에 싱가포르로 홀홀단신 커리어를 좇아 떠난, 그 첫 기록

by pigeon choi

싱가포르에 온 지 벌써 5일차. 업무 시작 전에 1시간은 꼭 운동 하겠다던 다짐을 하루만에 깨버렸다. 대신 하루에 한 번으로 바꿔버렸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유연성이다.


자가격리 덕분에 24시간 같은 풍경을 보고 24시간 지독하게 뻔한 반경 안에서 움직인다. 그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 건 상대적으로 번잡했던 이전의 시간들 때문이겠지. 인간은 또 얼마나 쉽게 적응하고 또 얼마나 폭력적으로 상대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48시간이 채 되지도 않아 상대적으로 어제에 비해 오늘은 어쩌구저쩌구 벌써 머릿속이 시끄럽다.


눈을 감아도 기억할 정도의 풍경이 지속되다보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더이상 보는 행위를 상실한다. 보인다는 것은 인지한다는 것이고 인지한다는 것은 곧 생각이 차지할 공간을 주는 것인데 이 풍경은 인식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래서인지 더 명징해지는 것은 공기중에 떠다니도록 방임해뒀던 내 문제들. 혹은 흰자로만 봐라봐 어렴풋이 실루엣으로 기억하던 내 안의 불편한 진실들. 불편하지만 마주봐야만 했던 문장들이 이제는 말을 걸어와 어쩔 수 없이 대화를 시작한다. 내가 얼마나 부족했고 부족하고 앞으로도 부족할건지를 인정하는 과정이랄까. 이 먼 곳에서는 나와 나밖에 없는데 조금 모자라다고해서 괜히 움츠러들지 말자고 내 어깨를 내가 토닥여줘야한다고.


밥은 따듯한채로 오지만 계속 식은 밥을 먹는다. 얼음이 가득 떠다니던 커피를 마신지는 더욱 오래된 것 같다. 이 또한 식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걸까. 삼시세끼를 오돌토돌한 식판에 담아 방문 앞 의자에 두고 노크를 두 번 한다. 어떤 이는 노크를 하고 가기도, 어떤 이는 서비스!를 외치기도, 어떤 이는 두 번의 노크로 존재감을 내비친다. 그들이 갔는지 문에 난 작은 구멍으로 확인하는 것이 하루 세 번 치르는 나의 의식 중 하나. 이 공간 안에서 움직임을 보는 것은 그 동그랗고 작은 구멍과 큰 통창으로 보이는 개미만한 사람들이 전부.


일. 잘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다만 식지 않고 열정을 찾아나가고자 노력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좋은 것은 뭘까. 아마도 익숙하고 진부하지만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만 같은 바깥 풍경과 내가 의도적으로 틀어둔 재즈 피아노 소리. 어느때보다도 평온한 마음과 어느때보다도 격동적으로 요동치는 불안함의 공존 속에서 불현듯 느껴지는 안정감. 뭐 그런 것들.


28/9/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