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와 변화에 대한 반성이랄까

싱가포르는 나를 외롭게도, 신명나게도 해.

by pigeon choi

*이 글은 팬데믹 시기의 중심이던 2021년 싱가포르로 홀홀단신 커리어를 좇아 떠난 개인의 기록


자가격리 마지막날. 아쉬운 마음에 새벽 3시까지 와인을 홀짝이며 다시 못 볼 창밖을 바라본다. 7일이라는 자가격리의 시간은 나를 가혹하게 만들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조금 더 지루하고 더 처절한 시간을 보내봐야 나라는 존재의 하찮음을 알게될텐데.


내가 묵은 방은 1812호. 창밖에는 금빛으로 가득한 전통 태국 양식의 태국 대사관과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교차로가 있다. 어떤 날에는 번개가 치고 어떤 날에는 비가 쏟아진다.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순식간에 창밖이 다른 모습을 한다. 드라마틱한 것은 나의 마음인 줄만 알았는데 은근히 바깥 풍경이 더 감정적이다. 낮에는 형형색색이던 이 풍경도 저녁에는 조금 더 노란 빛들을 쏟아내는 편. 그래서인지 조금 더 센치해지는 밤들의 연속이였을까. 오늘 밤에는 운동을 하다가 맞은 편 건물의 사람에게 손인사를 했다. 다시 손인사로 답해줬다면 짜여진 각본같이 뭉클한 장면이였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내일부터는 아침 러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렌다. 또 한 달만 사는 아파트일지라도 첫 싱가포르의 둥지에서 온전히 나와 내가 만나는 시간을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도 두근거린다. 매일이 어떤 감정으로 나를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흔들릴 지언정 부러지지는 않는 내가 될 거라는 자신도 있다. 근거가 없는 자신감일지라도. 근거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는 눈물 조금 흘리면 되는거니까. 그러다가 맛있는 와인 한 모금 하면서 살아가는 거겠지.


내일 아침에 있을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순수한 에너지를 얻는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씨름하고 몸둘 바 모르는 채로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일을 해내려다 보면 이 상황을 '문제'라고 프레임 씌워 개인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에 대한 자신감을 시나브로 갉아먹던 차에 한 번씩 문제의식을 느끼고 스스로의 한계를 자꾸만 깨려고 하는 나를 만난다. 그렇게 조금씩 다시 나를 토닥이고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면서 균형을 찾아나가는 것이 아닐지.


지난 밤에는 문득 이 도시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육성으로 내뱉을 정도로 강력했는데, 오늘 아침 PCR 테스트를 위해 이동하던 택시에서 느꼈던 감정은 나를 또 움츠러들게 만든다. 이 도시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집'이 생길 수 있는 것에 대한 불안함.


'집'과 '우리'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한다. 나에게 home이라는 단어가 주는 정의는 어떻게 달라질까. 나는 '우리'라는 개념 안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일까. 처절하게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것인지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무치게 외로운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멋에 취하는건지 뭔지. 모순으로 가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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