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기대는 나쁘지않아
*이 글은 팬데믹 시기의 중심이던 2021년 싱가포르로 홀홀단신 커리어를 좇아 떠난 개인의 기록
자가격리를 끝내고 나오는 길 처음으로 힐튼 호텔의 고객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자가격리자 신분으로 봐선 안 될 것 같은 호텔의 지저분하고 어두운 뒷문으로만 다니던 기분은 묘했었는데. 나쁘지많은 않았던 것 같기도. 정상 혹은 노멀이라는 단어의 범주로 들어와보니 알겠다. 내가 알고있던 그 '정상적' 엘리베이터를 타는 삶은 실은 내가 누리던 삶이였음을. 그리고 그 뒷면은 늘 가려져있다는 것을.
싱가포르에서의 삶은 설마의 연속 안에서 발견하는 심플함의 미덕으로 채워진다. 설마 이런것까지 미리 전화해야겠어? 라고 생각했으나 혹시나 전화해보면 역시나 했어야 했던 것이고, 설마 이런것 까지 감시하겠어? 라던 것들은 모두 실제로 감시되고있는 것이다(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도보로 100m 거리에 5개의 cctv가 있기도 한다). 사실 이와같은 시스템은 어찌보면 1을 넣으면 1이 나오는 심플함인데 한국에서는 1을 넣어도 묘하게 이득을 본 듯한 1.2가 나오기도, 약간 삐끗해 0.7정도가 나오기도 해서 '사람사는 게 다 그런거지'하며 혓바닥을 내밀곤 했는데 이곳은 원리와 원칙과 실행이 공존한다. 그래서인지 약간 허술한 한국인인 나로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유연성을 찾기 어렵달까.
회사에서 제공해준 집은 오차드 한복판에 위치한 호스피탈리티와 주거를 겸한 레지던스인데 사실 그 호화스러움에 약간 압도되었다. 야외 수영장에는 그리스식 돔 장식이 있고 콘도로 들어오는 로비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대리석으로 된 높은 기둥들이 가득하다. 한 달만 살기 너무 아쉬울 것 같은 기분. 이런 곳에 대체 누가 매달 7000달러를 내고 들어와 사는거람. 방은 1층인데 층고가 지나치게 높다. 어째서 1인이 사는 집에 예식장에서 볼 법한 회오리 계단이 있는 것입니까. 술에 취해 넘어질 것이 자명한 그 계단을 항상 노려보며 올라간다. 아직 복층은 익숙치 않아서 반 층 위는 내 집이 아닌 기분이다.
저녁은 La Tapastri라는 누가봐도 tapas bar인 곳에서 빠에야를 주문했다(응?). 2인용인데도 혼자 다 먹을 정도로 허기짐이 있었던걸까. 무억이 이 외로운 외국인 노동자를 배고프게 하는 걸까. 와인도 두 잔이나 마셨다. 한국에서 메뉴의 금액을 보지 않고 주문하던 버릇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똑같이 했다가 메뉴가 10번 중 2번은 잘못 계산된다는 걸 듣고 그재서야 조금씩 눈길을 준다. 그럼에도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시 메뉴는 안보고 카드를 내미는 습관으로 잘못 돌아가놓고 뻔뻔하게도 차라리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메뉴에 적힌 숫자를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같은 건 안든다. 이런 정신으로 대체 어쩌다가 서른 둘까지 오게된건지 알 길이 없네.
오는 길에 담배를 하나 사서 금연이라고 대놓고 붙은 기둥 앞에서 시원하게 한 대 폈다. 1을 넣어 1이 나오는 체계에 대한 소심한 외국인의 반항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