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없는 한국인의 싱가포르 정착기

킥킥거리다 또 외로워지는, 마치 뜨거운 햇살아래 비가 쏟아지는 이곳처럼

by pigeon choi

오차드에 위치한 서비스 아파트먼트에서의 삶은 꽤 만족스럽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고급 콘도메니움 형식이라 잔잔히 물결이 이는 평온한 수영장 풍경을 보며 밥도 먹고 저녁엔 고독을 벗삼아 위스키도 한 잔 할 수 있고. 아침 저녁으로 운동할 수 있는 Gym도 완벽히 갖춰져있다. 사실 막 입싱(싱가포르에 막 들어온)한 외국인이라 친구 하나 없는 삶에서 할 수 있는것이 운동 뿐이여서인지 아니면 자유의지로 Gym에서 시간을 보내는지는 아직 혼선이 있지만 운동을 아침저녁으로 두 번 할 때도 있다(내 뼈 괜찮아?). 단순한 삶의 루틴으로부터 에너지를 채우는 삶은 이런 것일까. 그렇게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다가도 문득 창밖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밤이 찾아온 것을 알면 고독까지 함께 BOGO(Buy one get one free)쿠폰으로 딸려오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것이겠지.


오늘 아침 처음으로 조식을 받아왔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부지런해진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아침 7시면 눈이 떠져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다. 내가 부족했던 건 실은 체력이 아니라 의지가 아니였을까. 그러면서 자연스래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나는 나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채우고 있는지?


오늘 아침에는 클리닉을 예약해야해서 전화를 걸어 메일주소를 남기려고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단어 및 알파벳을 불러야할 때 - 예를들면 HE로 시작하는 이메일이라면 - 알파벳을 하나씩 부르지 않고(HE로 부르지않고) Hospital의 H, Emerency의 E 이런 식으로 단어와 연결해 하나씩 알려준다. 아마도 각기 다른 국가에서 온 온갖 억양이 알파벳 발음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 이와같은 문화를 만든 것 아닐지. 다만 5분이 넘게 이메일주소만 공유하는 통화를 하는 와중에 대체 이 문화가 낳은 에너지 소비 전력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졌다. 대체 내 이메일을 또 왜이렇게 긴거야. 국가번호가 82로 시작하는 빠른 민족의 딸은 메일주소를 다 부르기도 전에 다리를 덜덜 떨고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제는 콜센터 전화를 하다가 카카오로 끝나는 내 이메일주소를 말하면서 Karaoke의 K 로 하나씩 부르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나도 모르게 Chocolate말고 kakao라고 말하고는 상담원과 둘이 한 참을 킥킥대고 웃었다. 실없는 사람들. 근데 그 상담원 나에게 이메일 안보내줌. 이메일을 공유하는 긴 여정 도중 미끄러진것이겠지.


햇볕에 새 지저귀던 소리가 나던 창문이 돌연 어두워지면서 장대비로 바뀌었다. 싱가포르 정말 감정적인 도시다. 원리와 원칙과 실행이 공존하지만 날씨만큼은 예술가가 따로 없다니까. 변덕스럽고 예측불가능한 것이 마치 내 글과 같네.


작가의 이전글외국인으로 산다는 것: 환상과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