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새 커리어를 시작한 지 이제 10일차. 어젯 밤은 새벽 3시에서야 노트북을 닫았다. 일이라는 녀석이 아침 9시부터 저녁까지 줄줄이 소세지처럼 엮인 미팅 스케줄과 그와 비례하게 부피가 와구와구 커지는 업무로 시간을 모두 소진하고는 새벽까지 침투해버린 것. 낯선 언어와 아직도 서로 낯가리며 거리두기 중이라 시간도 체력도 더 많이 소진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눈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주겠지'하며 이 문제를 개인화하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 뿐. 갉아먹으려면 얼마든지 야금야금 뜯어먹을 수 있는 게 자존감이니까. 하지만 내 개인의 삶은 너무 소중하고 내 삶의 영역 대부분을 내가 가진 직업의 타이틀에 잠식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에게서 '일'이라는 녀석을 뺐을 때 0이 남는 삶을 지양한다. 지금껏 이미 너무많은 파이를 내주었는걸
고작 십일차. 아직 이곳에서의 나는 이방인이다. 당연하지. 문제는 나 스스로도 내가 이방인임이 사무치게 느껴질 때 마주하는 처절한 고독함. 아마도 이 감정은 아마도 내가 앞으로 짊어져야 할, 혹은 자연스럽게 '또 찾아왔구나'라며 반겨줘야할 감정이겠지. 혹은 짊어지거나 반긴다는 행동을 취사선택하기보다는 공존하는 삶.
앞으로 한 시간 뒤면 내가 싱가포르에 들어온 첫날부터 이를 갈고 준비했던 중요한 미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에이전시의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자리. 그 해지를 위한 근거자료를 준비하고 프로세스를 성립하고 글로벌 가이드를 모두 따른 절차를 받았음을 검증하는 것. 그리고 그 미팅을 낮선 언어로 리드하는 것. 사실 모두의 앞에서 의젓하고 이성적인척 했으나 실은 떨리는 마음에 괜시리 스크린 창을 무한대로 생성하는 등의 바보같은 짓을 한다. 단순히 비즈니스 모델이 맞지 않아 서로 다른 길을 가는 것인데 나는 무엇이 이렇게 무서운걸까. 이곳에서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것에 대한 예측불가능함이 주는 두려움이려나. 회사생활을 십 년을 했어도 아직 어리다.
어제는 워킹 비자 실물 카드를 발급받으러 다녀오는 길에 차이나타운을 들렀다. 낯선 이곳에서 더 낯선 언어로 대화하는 그들에게 끌려 몰(Mall)이 아닌 거리에서 로컬 음식을 판매하는 호커스토어 앞에 멈춰섰다. 앞서 구매한 중국인을 따라 나도 밥 위에 중국식 토핑을 이것저것 잔뜩 얹어 사봤다. 그때 나의 랜덤한 선택에 정말로?의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던 종업원의 눈빛이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대충 구매해서 집에와서 캐롤라인과 먹었는데 생선이 가오리였다. 왜이리 반가운지. 하지만 레드 와인과는 최악의 조합이였지.
더 주절주절 하고싶은 말이 많지만 프레젠테이션 앞 현실로 돌아가야지. 오늘도 잘 해냈어. 내일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