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물의 성격은 닮아있어

by pigeon choi

한국의 파도는 주로 자잘하게 부서진다. 한국에서 '물'이 가진 시각적 속성은 주로 잔 물결이 일거나 작은 물방울, 개구리의 폴짝임이 주는 파동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마음의 고요가 필요할 때 이 한국식 물의 속성이 도움이 되곤 했다. 고요한 호수의 표면이라던지 협재 바닷가의 카푸치노 거품같은 반복적인 작은 파도를 떠올리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싱가포르에서 물의 속성은 정확히 그 반대. 감정적으로 쏟아지는 스콜과 맞으면 가끔 아프기까지 한 공격적인 빗방울, 동남아가 가진 특유의 드라마틱한 파도. 그리고 물 만난 야자수가 뿜어내는 장대한 기개 같은 것이 어우러져 특유의 활기를 가지고있다.


이곳에서의 내 마음의 변화는 그 도시의 물의 속성에 전염되어간다. 큰 좌절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왔다가 갑자기 햇살이 나면서 고요함이 찾아오고 다시 스콜처럼 쏟아지는 실망감이 혼자 있는 나를 쉴 새 없이 때린다. 그리고 그 감정이 생성되는 모든 근원은 결국 날씨 탓이겠거니 생각한다. 그 물의 속성이 변덕스러우니 나또한 계속 생각과 생각 또 생각하는 매일들로 가득 찬거라고.


사실 그 안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변덕스러운 생각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를 방문한 '다름'과 '모름'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아닐까. 만나본 적 없는 상황이 파도처럼 몰려오지만 그 당황스러움을 좌절감으로 포장하는 것은 나의 선택인 것. 그리고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을 결국 잘 대처해내지 못한다는 나에대한 실망감으로 프레임씌우는 것도 결국은 나의 선택인 것. 만약 내가 그 선택의 주인이라면 그것을 호기심으로 바꾸고싶다. 그리고 알아가고 싶어하는 관심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까?


잔 물결이 일던 곳에서 살던 나는 쉽게 고요가 가진 미학에 대해 생각해왔고 그것은 곧 참아내고 견뎌내는 것으로 귀결되어왔다. 한국에서의 삶은 그 물의 속성을 닮아 고요하고 잔잔하게 버텨내고 시끄럽게 굴지 않는 것을 평온이라고 칭해왔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때론 감정적이고 예측불가능하지만 솔직한 감정으로 나에게 손 내밀고 있는것은 아닐까. 그것을 쾌활함과 활기로 바꾸는 것은 나의 몫이 될 것이다.


어쩌면 그 시도가 어제보다 한 꼬집 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만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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